불협화의 긍정
며칠 전부터 하늘은 뿌연 구름들이 햇빛을 등지고 빗물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햇빛이 없어도 괜찮은 날, 이런 날엔 나름 괜찮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평안을 가져다준다. 반면 높은 습도, 퀴퀴한 먼지냄새, 좋아하는 신발, 옷들이 젖는 일들이, 이외의 이유로도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비는 우리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사례로 양면성을 띤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비는 불규칙적이고 불협화를 들려주는 기상현상이다. 그러함이 편안함을 가져다준다는 모순이 나는 좋다. 예전부터 근무 중 비가 얼마나 오는지 확인차 밖에 나가면 잠시 멍을 때리게 된 적이 자못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규칙적이고 딱딱한 곳을 나오면 불규칙한 소리 속에서 잠시 평온했었던 것 같다. 깨끗했던 현관이 비바람에 떠내려 온 부유물로 꾸며지는 일이, 아직 땅에 닿이지 않은 빗물 사이로 반사된 나지막한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오늘은 햇빛이 없어도 괜찮겠구나 하는 안심이 되었다. 차들이 지나가며 만든 불협화의 작은 파도 소리, 방문 밖 작은 천장을 두들기는 불규칙적인 템포가 규칙적인 사회의 평일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장마는 꽤나 길었다. 올해 장마는 내가 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시험하듯 꽤나 오랜 시간 구름 안에 세상을 가둬 두었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 여느 때와 같이 창문을 열어 비 오는 것을 구경하기도, 환하게 등을 켜놓고 빗소리를 들으며 고즈넉한 나날을 보냈다. 이번 장마 동안은 잠시 비가 멈추어도 먹구름은 여전했는데 그랬던 탓에 취미생활은 제한적이게 되었고 집에 있게 되는 날이 대다수였다. 그러면서 기분은 점점 먹구름과 비슷하게 물들어 갔다.
며칠이 지나 내일은 맑다는 기상예보 기사를 보았고 나는 집에 있는 동안 게을러져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지만 아침부터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사진 속 멋진 구름들과 햇빛에 닿은 사물들을 보았을 때 나는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전부터 이렇게 맑은 날에 노을을 찍고 싶었는데 그동안 날씨 운은 나를 따라주지 않았었다.
나는 일몰 2시간 전에 얼마 남지 않은 필름이 담긴 카메라를 들고나갔고 하늘의 상황은 평소에 맑았던 날보다 비 온 뒤 갠 하늘이 더욱 맑았다. 높이 솟아오른 구름들과, 그것들을 비추는 햇빛이, 서서히 지며 만들어지는 노릇한 노을의 과정을 올려다보며 움직인 걸음들은 잠원 한강 공원에서 멈췄다.
한강 공원 입구에는 사람 손에 익숙해 보이는 길고양가 있었다. 길고양이와 몇 차례 눈 맞춤을 가졌고 서서히 호기심을 느꼈는지 한참 울어대며 나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용케 다친 곳은 없어 보였고 마냥 천진난만한 그 모습은 그 녀석이 살겠다는 의지도 있었겠지만 한강 공원을 놀러 온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의 흔적들이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참 다행스러우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넓은 오지랖으로 걱정스러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너의 맞은편에 앉아 너에게 관심을 표하는 일뿐인데, 그걸하러 이따금 너의 안부를 보러 올게.'
한강 맞은편에는 비를 다 뿌린 듯한 먹구름과 내가 있던 쪽의 햇빛의 산란으로 생긴 자줏빛 바탕 속에 채워 진하얀 구름들이 오묘한 대조를 띄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그동안 하지 못한 것들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거나 뛰는 사람들, 반려견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그들은 그랬던 날씨와 함께 풍경이 되어 나의 필름 위에 피사체가 되었다.
노을이 사라지고 짙은 남색 하늘이 드리울 무렵, 또다시 나는 하늘을 보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의 하늘도 노을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펼쳐졌었던, 이러한 여러 하늘들을 보게 된 건 오랜 시간 지속된 장마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은 비를 좋아하게 된 하나의 또 다른 이유가 되었고 또다시 장마를 버티게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비가 내리는 그 자체의 현상도 좋지만 그 이후에 오게 될 겹겹이 쌓인 하나들의 풍경들을 기대할 수 있음에 종종 찾아오는 불협화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