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사채판
https://youtu.be/49lt5A2FggY?si=YM78qZ6UiIXTowLR
일상은 언제나처럼 잔잔했다.
아침 8시에 집을 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오전 시간은 주식 객장에서 차분히 시장을 들여다보며 보냈다.
우량주를 꾸준히 보유하면 결국 오른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IMF가 오기 전까지는,
주식은 분명 나에게 돈을 가져다줄 것이다.
내 곁에는 최실장, 그리고 개인 변호사 두 명이 있다.
건물 15층은 이전 직원들이 그대로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최실장과 변호사들을 경기도 일산으로 보냈다.
일산 지역에서 천억 규모의 땅을 매입하라는 지시와 함께였다.
아울러 서장에게는 사채 업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라고 명했고,
천억 원은 주식에 투자할것이다.
다음, 건설, 은행, 전자—
당시만 해도 이들의 미래는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밝았다.
나는 1층 증권사 지점장을 불러
우량기업 30개 리스트를 준비하라 말했다.
특히 지난 일주일 안에 하한가를 맞은 종목들을 포함해서.
8시 30분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던 참에
지점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건네받은 리스트는 예상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30종목, 동시호가에 전량 매수하세요.”
“네, 아가씨.”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나는 금요일 마감 후의 결과만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공매도는 하지 않았다.
오전 10시, 다시 객장에 나가보니
사람들은 모두 전광판만 응시하고 있었다.
당시엔 컴퓨터가 흔하지 않았다.
나 역시 한쪽에 앉아 사람들의 표정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내 건물에서 3분 거리에 관광호텔이 있다.
지하에는 제법 이름난 나이트클럽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그 호텔에서 쉬며,
오랜만에 나이트클럽에도 들러볼 생각이었다.
점심은 충장로의 작은 분식집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가볍게 해결했고,
기분 전환 삼아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혼자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해가 기울 무렵 혼자 저녁을 먹고,
밤 9시30분, 지하 나이트클럽의 조용한 월요일 문을 밀어 열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가장 비싼 양주를 주문하며,
웨이터에게 팁을 건네고 “알아서 좋은 사람으로 모셔오라” 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빡빡 머리를 한 젊은 남자가 들어섰다.
누가 보아도 운동선수였다.
“운동하니?”
“네.”
“무슨 운동?”
“복싱입니다.”
20살 입니다.
체고를 갓 졸업했고 개인 체육관에서 운동 중이라 했다.
그 젊음은 담백하고 당당했다.
명함을 건네는 그의 손에는
의외로 ‘관장’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밤 12시까지
우리는 나이트클럽에서 술잔을 기울였고
결국 그를 호텔로 데려왔다.
그날밤은,
마치 나를 수천 조각으로 부숴놓기라도 하듯
단 한순간도 힘을 거두지 않았다.
새벽까지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뜬 시간은 오전 11시이다.
나는 아직 잠든 그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일어나. 해장국 먹으러 가자.”
“네.”
함께 샤워를 마치고 건물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자
그의 눈이 커졌다.
그 유명한 벤츠였다.
“빨리 타.”
근처의 유명한 해장국집에서
따끈한 국물을 마주하고 앉으니
그의 얼굴은 여전히 전날 밤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그의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많이 먹어. 밤새 힘 썼으니 영양 보충해야지.”
수육도 한 접시 더 시켰다.
“체육관은 여기서 멀어?”
“아니요. 걸어서 20분 정도예요.”
“그래. 다음엔 누나가 놀러 갈게.”
“네, 누나.”
체육관 앞에서 그를 내려주고
사무실로 향하려 했으나
몸이 너무 지쳐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저녁 6 시부터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새벽까지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다.
눈을 뜨니, 온몸이 기분 좋게 나른했다.
이런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다.
다음날 출근했으나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3일을 혼자 조용히 보냈다.
어느 오후, 드라이브를 하다 보니 깨끗해 보이는 마사지숍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 보니 내부는 향기롭고 정갈했다.
두 시간의 마사지는 혈액순환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상쾌함을 남겼다.
여직원들은 단정했고 손놀림도 능숙했다.
토요일로 예약을 잡아두고 나왔다.
금요일,
나는 닷새 동안 정리해 두었던 주식들을
오후 장 마감과 함께 전부 팔았다.
수익은 오억도, 십억도 아닌 500억이었다.
오후에, 체육관에 들르니
그는 땀에 젖어 샌드백을 두드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여섯 명의 젊은 선수들이 함께 있었는데
모두 그의 고등학교 후배들이라 했다.
“치킨하고 족발 시켜주고나서, 운동 끝나면 같이 밥 먹자.”
“네, 누나. 7시에 끝나요.”
그날 밤도 나는 호텔로 향했고,
내 몸은 다시 한 번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밤을 보냈다.
수만조각으로 부서지는 잊을수 없는 밤이였다.
다음날, 예약한 대로 오후 세 시에 마사지숍에 들렀다.
두 명의 여직원이 들어와 피로를 풀어주었고,
주말이라 최실장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끝나면 그를 먼저 퇴근시킬 생각이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밖이 심상치 않게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급히 가운을 걸치고 가방에서 가스총을 꺼냈다.
문밖에서는 거친 소리가 뒤엉켰다.
문을 열자 최실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가씨, 나오지 마세요! 문 잠그세요!”
두 여직원은 무서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가스총의 장전을 확인한 뒤
문을 열고 곧장 소리의 방향으로 나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남자 둘에게 연속 두 발을 발사했다.
그들이 쓰러지자
최실장은 순식간에 또 다른 한 명을 제압해 버렸다.
“다친 데는 없니?”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침착하게 말했다.
“다 묶어서 방으로 데려와.”
“네, 아가씨.”
잠시 후, 건장한 남자 셋이 손발이 묶인 채 끌려왔다.
나는 조용히 지시했다.
“여자 사장도 잡아와.”
“네.”
나는 떨고 있는 여직원들에게 돈을 쥐여주며 낮게 말했다.
“오늘 너희는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살고 싶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마.
지금 나가.”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두 명은 칼에 찔렸고,
최실장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태연하게 그들에게 물었다.
“두 번 묻지 않아. 누가 시켰냐.”
침묵이 흘렀다.
다시 물었다.
“두 번째다. 말해.”
여전히 입을 닫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세 번째다.”
그제야 한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000 형님이 보냈습니다.”
싸늘한 정적만이 남았다.
그날, 세 명은 숨을 거두었다.
복도에 있는 최실장에게 말했다.
“여자 사장 데리고 와.”
문을 열고 상황을 본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너 하기 나름이지.”
나는 차갑게 시선을 내렸다.
“여기 온 건 너만 알아. 누가 시킨 거냐.”
“0…000 사장입니다.”
“이유는?”
“사장님이… 사채 시장에 엄청난 돈을 들고 뛰어들었다고…
그 사장님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사채업자이자 조직입니다…”
“살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할래?”
“네… 사장님…”
“15분 뒤에 112에 신고해.
너희끼리 영역 다툼하다 죽은 거라고 말해.
그러면 넌 무혐의로 오늘 풀려날 거야.”
“네… 제발 살려만 주세요…”
나는 옷을 차려입고 시간을 확인했다.
“10분 뒤에 신고해.”
그리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경찰서장에게 직접 전화했다.
“조폭들끼리 세력 다툼 벌이다가 000가 지시했다더군.
긴급 수배 돌려서 바로 다 붙잡아.”
"네 아가씨."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있는데
경찰차 세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들어왔다.
“최실장, 병원부터 가자.”
“괜찮습니다…”
“얼른 가. 지금 당장.”
“네, 아가씨…”
병원에 도착하니
그는 칼에 깊게 찔린 상태였다.
“부인한테는 서울 출장 갔다고 하고 입원해.”
“네 아가씨…”
감히 나를 죽이려고 한
이 놈들을 용서 할 수가 없다.
나의 잔인한 본성이 오늘 그대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