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수녀와의 사랑

by 전태현 작가

https://youtu.be/49lt5A2FggY?si=YM78qZ6UiIXTowLR

ChatGPT Image 2025년 11월 14일 오전 09_41_45.png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새 스무 살의 늦가을이 찾아왔다.
여전히 경찰과장은 아름다웠다.

열 살이나 어린 남자친구와도 함께 식사할 만큼, 막힘 없이 세련된 사람이었다.




올해 동안 그녀는 내 곁에서 많은 일을 도와주었다.

사채업자들과 조폭들을 직접 만나러 다니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나에게는 누구보다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

그녀는 머지않아 K광역시 경찰서장으로 진급할 것이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들어간 비용도 적지 않았다.



그 무렵, 나주에 일본식 고택이 하나 매물로 나왔다.

약 1500평 정도 되는 넓은 집이었고,

사진으로 본 순간 마음에 들었다.

나는 곧바로 변호사에게 매입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날, 건설사에서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50만 평의 땅과 학교까지 전부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제안 금액은 3000억. 지금 가치로는 3조에 가까운 돈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계약금을 받고 바로 나주로 이사를 결정했다.



그해 10월 말의 일이었다.


성민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다음 달이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11월에 우리는 나주에 완전히 정착했다.


아내가 출산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자,

나와 성민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사실 우리 둘 모두 혈육 하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12시간이 넘는 힘겨운 진통 끝에 아들이 태어났을 때,

성민은 아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스무 살에 아버지가 된 것이다.

장인, 장모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준비해둔 봉투에 천만 원을 담아 그의 아내 손에 쥐여주었다
“일주일 쉬고 출근해.”
"네 아가씨.".


집으로 돌아오니 도우미 아주머니가 저녁상을 차려놓고 갔다.


아줌마의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였고,

집 근처에는 대중사우나까지 있어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어느 날, 혼자서 차를 몰고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금성산 아래로 향하던 중,

동화 속에 나올 듯한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고아원이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차를 세웠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데,

수녀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다가와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

서구적인 이목구비, 조용한 미소,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차 한 잔 하자는 말에 이끌려 원장실로 들어가니,

놀랍게도 그 수녀가 이 고아원의 원장이라고 했다.
나이는 아무리 봐도 20대 후반쯤으로 보였고,
수녀가 된 지는 2년 남짓이라고 했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라며,

일상을 설명하는 모습이 정갈하고 단단해 보였다.


“필요한 건 없습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말했다.
“여자아이들 생리대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다음 날, 나는 대형 마트에서 생리대를 가능한 만큼 모두 구입해 탑차에 실어 보냈다.



고아원에 들르자, 원장은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며 고마움을 거듭 표현했다.
“이 정도면 1년은 넘게 쓸 수 있어요…”

나는 다시 물었다.
“또 필요한 것은요?”
“아이들 운동복과 운동화가 부족해요.”

문득 내가 소유한 건물 1층의 스포츠 매장이 떠올랐다.
“여기 아이들, 총 몇 명입니까?”
“35 명입니다.”

나는 곧바로 매장 사장을 불렀다.



“트레이닝복, 잠바, 운동화. 사이즈 체크해서 전부 지급해주세요.”

그날 이후, 나는 거의 매일 고아원을 찾았다.

수녀는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했고,

대기업에서 1년을 다니다가 적성과 마음이 맞지 않아 사표를 내고 수녀가 되었다고 했다.



수녀복을 벗은 모습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말까지 매일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그녀의 미소가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문득 그녀에게 말했다.


“옷… 하나 사주고 싶어요. 잠깐 시내로 나가요.”

수녀는 잠시 당황한 듯 머뭇거리다가 따라나섰다.
시내에서 속옷부터 청바지, 구두, 코트까지 골라 입혀보았다.


그녀가 등장하는 fitting room의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을 보는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전… 돈이 없어서 이런 옷은 못 사 입어요.”


조심스레 내뱉는 그 말이 유난히 가슴에 남았다.



그 겨울, 경찰과장은 마침내 광역시 서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새 집으로 이사한 후에도,

적막한 방 안에서 혼자 보내는 밤이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성민은 근처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고,

장모님이 와서 도와준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아기를 키워갔다.



그리고 계절은 어느새 21 살의 봄으로 넘어갔다.

정원에는 꽃이 가득 피었다.
작은 연못과 일본풍의 정원 사이를 거닐면
봄바람이 스치며 세상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내 유일한 취미는 등산 비슷한 산책이었고,
그 길을 수녀와 함께 걸을 때면 시간이 유난히 느리게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고아원에 도착하니 수녀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예감에 숙소 문을 열어보니,
그녀는 온몸에 땀을 흘린 채 고열로 쓰러져 있었다.



“왜 병원 안 갔어요?”
“…약 먹으면 괜찮아요.”
“바보처럼 왜 참아요. 병원 가요.”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잠옷은 땀에 완전히 젖어 있었고,
그녀는 속옷이라도 갈아입어야 한다며 옷을 벗었다.
수녀복 아래 감춰져 있던 몸은 군살 하나 없고 단단했다.
마치 오랫동안 운동을 해온 사람 같았다.



그 순간,
오랜만에 보는 ‘여자’라는 존재의 인간적인 온도가
낯설 만큼 깊게 가슴에 파고들었다.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고 츄리닝을 걸친 그녀를 부축했다.
나는 성민, 즉 최 실장을 불렀다.

“최 실장! 빨리 와.”



그는 그녀를 업어 차에 태웠고, 우리는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은 후 바로 입원했다.
주사 한 대, 약 몇 알.
그녀는 금세 잠에 빠졌다.

“최 실장, 들어가 있어. 필요하면 부를게.”
“네, 아가씨.”



그녀는 무려 아홉 시간이나 내리 잠들었다.
나도 그녀 곁의 의자에 앉아 손을 잡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를 어루만졌다.
눈을 뜨니 수녀가 조용히,
아주 고요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둘 다 놀라 웃어버렸지만
더는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배… 안 고파요?”
“응, 배고파.”

나는 시계를 봤다. 어느새 밤 9시이다.
최 실장에게 전화해 밥과 국만 가져오라고 말했다.

샤워를 하고 돌아온 그녀는
병원 조명 아래에서 더 아름답게 빛나는 것 같았다.



청초함과 성숙함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그녀는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수녀와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그녀가 내가 숨 쉬는 것까지 들으려는 듯 가까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고 끌어안았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것이 사랑일까.?"


“나… 오늘 퇴원할래.”
“하루만 더 있어줘. 제발.”
“…그럼 내일은 진짜 퇴원할 거야.”
“응. 그래.”



하루 동안 최 실장이 장모님께서 해준 집밥을 세 끼씩 가져다 주었고,
다음 날 오전, 수녀는 퇴원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집에 도착하니 도우미 아주머니가 전복죽과 몸에 좋은 음식들을 잔뜩 준비해놓고 있었다.



수녀는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다시… 같은 침대에 누웠다.



아침 햇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 무렵, 나는 눈을 떴다.
거실 쪽에서 은은한 연기가 퍼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수녀가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왜 그래? 고민 있어?”
내가 묻자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나… 고아원으로 못 돌아갈 것 같아.”

“…나 때문이야?”
“응.”



잠시 공기가 멈춘 듯 고요해졌다.


“그럼… 나랑 여기서 같이 살래?”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아직….”
“내가 취직시켜줄게. 일하면 돼. 부담 갖지 말고.”

그녀는 깊게 담배를 빨더니,
불안과 안도가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어.”
“언제든 오고 싶으면 와. 여긴 항상 열려 있어.”
“…응. 고마워, 자기야.”



그녀는 웃었다. 가슴이 밀착이 되어서 서로의 허리를 끌어 않았다.

아침을 먹고, 수녀는 최 실장의 차를 타고 떠났다.



며칠 동안 함께 있었던 그녀가 사라진 집은
갑자기 너무 넓고 너무 조용했다.



하지만 강요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뒤로 수녀는 일주일에 한 두번,
아무런 연락도 없이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내 옆에서 잠들었다.



그런 일상이 자연스러워질 무렵이였다.



기회가 찾아왔다.

변호사가 건물을 찾던 중
K광역시 충장로에 15층짜리 빌딩이 매물로 나왔다고 보고했다.

“1층이 증권회사고, 위치도 좋습니다.”
“가격은?”
“300억입니다.”
“진행하세요.”
“네, 아가씨.”



그 건물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이다.
당시 광역시에서 가장 좋은 위치였다.
무엇보다 1층의 증권회사가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15층에 내 사무실을 꾸미고,
옆에는 직원 사무실을 마련했다.
건물 매입이 마무리되자
나는 수녀에게 저녁을 먹자고 연락했다.



참치집에서 보기로 했는데,
도착한 그녀를 본 순간,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빨간 블라우스에 미니스커트.
머리도 곱게 말려 있었고,
붉은 립스틱까지 칠한 모습은
그동안 보아온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와… 너무 예쁘다.”
내 말에 그녀는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자기야… 나 수녀 그만두었어.”

“…지금은 어디서 지내?”
“후임 원장 올 때까지 고아원에서 조금 더 도와주다가 나올 거야.”



나는 준비해둔 말을 꺼냈다.
새로 매입한 건물 이야기,
관리인을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등 이다.

“건물 관리… 너한테 맡기고 싶어.
여기서 같이 출퇴근하자.”

그녀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미소를 지었다.

“…응. 좋아.”



그날 우리는 참치와 소주를 마시며
정말 오랫동안 웃었다.
행복했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밤이었다.

한 달 정도 함께 살았다.
그러다 그녀는 어느 날 말했다.



“자기야 나… 직원으로 남고 싶어.
너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내 자리에서.”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고,
그녀는 독립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수녀는 마지막 결정을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사표를.....”

그날 밤, 나는 봉투 하나를 건넸다.
아파트 한 채는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녀는 손을 떨며 받아들었고,
둘 다 말없이 울었다.
많이, 아주 많이 울었다.



“수녀는 못되어도,

나는… 신앙인으로 살고 싶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녀의 선택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엇이 되었든
행복하길 바랄 뿐이었다.





P.S ,전태현 작가의 유튜브입니다.

https://www.youtube.com/@%EA%B7%B9%ED%95%9C%EC%83%9D%ED%99%9C


https://youtu.be/YcnSs9SQ3cE?si=V-eUR_AwF1pPO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