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쇠창살처럼 단단한 철문이 열리고,
작은 가방을 든 한 남자가 걸어나온다.
그는 손으로 이마 위 햇빛을 가리며 숲 너머를 바라본다.
그의 이름은 최민호, 사기 전과 3범, 마흔 살.
지금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참이다.
그를 마중 나온 이는 박사장. 두부를 조심스레 내밀며 말했다.
“애썼다. 앞으로는 꽃길만 걷자. 자, 먹어.”
민호는 묵묵히 두부를 받아들고 한입 베어 문다.
두 사람은 15년 전, 2010년의 어느 날, 같은 감방에서 처음 만났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고아라는 것.
그리고 ‘전문 사기꾼’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박사장의 전과는 폭행이다.
이유인즉, 15년 전.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그는 접근금지명령 중이었음에도 집에 들이닥쳐,
실제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아내를 보고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그들을 폭행했다.
결국 징역 1년. 그는 사채와 부동산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민호는 당시 사기로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박사장과 약 1년을 함께 수감 생활했다.
출소 후, 민호는 박사장을 다시 찾아갔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15년을 함께 일해왔다.
두 번째 공범 사건은 부동산과 빌딩을 매개로 한 사기극이었다.
민호는 그 사건으로 1년을 복역했고, 대신 10억 원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엔 다단계 방식의 사기로 15억 원을 챙긴 뒤,
민호가 다시 감방에 들어갔다.
이 모든 설계의 중심엔 박사장이 있었다.
그가 민호와 15년을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박사장에게는 자식들이 있었고,
이혼한 전처가 그들을 양육 중이었다.
민호는 가끔 선물과 용돈을 챙겨 자식들에게 전하며,
박사장의 신뢰를 쌓아왔다.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 그는 민호를 배신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반면, 민호는 세상에 홀로 남은 몸이었다.
박사장의 자산은 이미 200억을 넘긴 지 오래다.
출소한 민호를 데리고 박사장은 사우나로 향했다.
“사관학교에서의 때는 말끔히 씻어내고, 오늘은 형이랑 진탕 즐기자.”
“네, 형님.”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피로를 씻고,
20대 여직원들에게 전신 마사지를 받으며 오후가 흘러갔다.
저녁 여섯 시. “민호야, 고기 먹으러 가자.”
“네, 형님.”
소고기와 소주, 마음껏 피우는 담배.
술기운이 무르익자 둘은 근처 가요주점으로 자리를 옮긴다.
여자 도우미들을 불러 원 없이 양주를 마시며 자본주의의 향락을 만끽했다.
밤 12시, 여자들과 함께 호텔로 향했지만,
민호는 오랜만의 과음으로 그대로 잠에 빠져버렸다.
아침. 민호가 눈을 뜨자,
낯선 여자가 침대 머리맡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빠, 어제 술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응, 오랜만이라 좀 마셨지. 실수한 건 없니?”
“아뇨. 매너 좋으시던데요? 저 같은 이쁜 애를 그냥 재워주시고…”
민호는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그렇게 둘은 아침 햇살 아래,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샤워를 마친 후 호텔을 나섰다.
해장국집에서 식사를 하며 여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민선희. 스물일곱.
텐프로에서 일한 지 3년째.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부채만 쌓이고 감당할 수 없어 유흥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키 170cm. 전형적인 한국 미인형. 나름 엘리트였다.
원룸에 홀로 살며 매일을 버티는 중이었다.
점심을 마친 뒤, 커피숍에서 민호는 수표 한 장을 내밀었다.
“오빠, 어제도 많이 주셨는데요…”
“괜찮아. 오빠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감사합니다.”
선희는 수표를 지갑에 넣으며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 민호에게 건넸다.
“다음엔 제가 소고기 살게요.”
둘은 헤어졌고, 민호는 택시에 올라 오피스텔로 향했다.
김사장이 미리 말끔히 정리해둔 오피스텔.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고층이었다.
컴퓨터를 켜고 통장 잔액을 확인한다.
15억 원이, 그가 감방에 들어가던 날 입금되었다.
‘오늘은 그냥 푹 쉬자.
15년 동안 두 번 감방 갔다 오고, 25억 벌었으면 나쁘지 않지.’
그는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뜬 건 저녁 8시. 배가 고팠다.
싱크대에 라면을 올려두고,
점심때 받은 선희의 메모를 바라보며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출근했니?”
“아뇨, 이제 나가려구요.”
“출근비 줄게. 오빠랑 회에 소주 한잔 어때?”
“그럼 어제 소고기 퉁 치는 거예요. 회는 제가 살게요.”
“그래. 9시에 한강 보이는 포차촌에서 보자.”
민호는 셔츠 하나만 걸친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술을 마실 예정이었기에 차량은 지하주차장에 그대로 두었다.
오후 8시 55분. 포차에 도착하니 선희가 먼저 도착해 앉아 있다.
민호가 맞은편에 조용히 앉는다.
3월, 회가 좋은 계절. 농어와 광어를 주문하고 소주를 마셨다.
원샷.
맑은 정신으로 선희를 바라보니, 전날보다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보라색 미니원피스가 잘 어울렸다.
“오빠, 11시까지는 가게 들어가야 해요. 예약이 있어요.”
“이 밤에 예약이라니? 뭐하는 사람들인데?”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듣자 하니… 스님들이라고 하더라구요. 세 분.”
“허허, 하산하셨나 보구나.”
이야기가 이어졌고, 어느덧 10시 20분.
민호는 선희를 가게 앞에 내려주고 다시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소주 한 병을 더 마시며, 내일 박사장과의 ‘새로운 사업’을 연구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