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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Day Apr 24. 2023

[창작소설] 기억, 지옥 (2부)

송지범 단편

기억, 지옥 (2부)

- 송지범



전시를 허락하는 대신 내 신상을 절대 상세히 알리지  말라고 요구했고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대신 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니 시간을 내 달라고 했다.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손님맞이 탁자에 앉은 그녀는 녹음기와 필기도구를 꺼낸 후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진에 대해 설명 하는 동안에도 딴 생각을 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딴 생각은 그녀의 겉모습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주로 그녀가 빨간색 뿔테안경을 낀다면 더 섹시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확실히 기억나는 것 하나는 내가 사진을 찍을 때 외로웠던 감정을 숨긴 체 거짓으로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던 순간부터 그녀에게 거짓으로 대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녀와 사귀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내가 거짓으로 말한다고 해도 그녀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진실로 인해 내가 상처를 받기는 싫었다. 차라리 거짓으로 내가 상처를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그래왔으니까.


그녀는 사진 설명을 핑계로 일주일에 세 번은 사진관으로 찾아왔다. 삼십분 정도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한 시간 정도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두 시간도 안 되었지만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매일 기다려졌으며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는 날도 많아졌다. 그녀와 대화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녀와 대화를 하면 항상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사진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건 고독이나 외로움과 거리가 먼 사진인데요?”

“그냥 느낌이 좋아 보여서요.”

“인사동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우연히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노부부가 보였어요. 젊은 연인들은 무심코 스쳐 지나가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이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있던 거예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여서 곧 바로 셔터를 눌렀어요. 흔하게 볼 수 없는 장면이잖아요.”

“노부부는 과연 사랑 때문에 손을 잡았을까요?”

“글쎄요.”

“저는 사랑보다는 친밀감으로 느껴져요.”

“친밀감이요?”


내가 의아해 하자 그녀는 음료를 마셔 촉촉해진 입술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남자는 참 이상적이에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사랑스럽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지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막연한 표현은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같았으니까.  

한 달쯤 지나서 사진에 대한 설명은 끝났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은 꼭 만나곤 했다. 하루하루 그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내겐 기쁨이었다. 그녀가 의외로 유쾌하고 웃음이 많은 여자이며, 룸메이트가 한명 있으며, 말하기 곤란할 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밤늦은 시간 한강에서 먹는 캔 맥주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만큼 가까워졌을 때 나는 지수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강도 분위기 괜찮네요.”

“내말이 맞죠?”


나는 어린애처럼 즐거워하는 그녀가 귀여워 피식 웃어버렸다.


“전시회는 잘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뭐 문제 있어요?”

“그건 아닌데, 제가 좀 게을러서요.”


두 번째 캔 맥주를 다 마셨을 때 그녀에게 용기를 내었다. 그녀는 말없이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우 씨.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요?”


지우는 갑자기 내가 이상한 질문을 하자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나 지우 씨를 더 알고 싶어요.”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입가에 머금었던 그녀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말했다.


“지우 씨는 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지 않아요?”

“알면 좋죠.”

“그럼 우리 진지하게 만나 볼래요? 서로에 대해서 많은 걸 알 때까지.”


그녀는 다시 수줍은 미소를 지었고,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는 내 외로움을 채워주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였다. 그녀는 여태까지 내가 만난 여자들과 달리 말이 별로 없는 것이 좋았다. 대답하기 보다는 미소 짓는 것을 더 좋아하는 여자였다. 나의 과거 같은 것도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유나처럼 무조건 순종하지도 않았다. 지우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내가 외로워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이런 게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필요 없어진 그녀의 그 명함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을 때 핸드폰 진동 소리가 났다. 문자가 온 것 같아서 핸드폰을 열자 ‘KTP[1431]섹시녀예쁘게가꾼몸매즐감30초무료<문의1431>’ 라는 내용의 스팸문자가 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삭제 해 버리던 스팸문자였지만 나는 천천히 접속버튼을 눌렀다. 일본인로 보이는 여자가 몸매를 드러낸 채 미소 짓고 있었다.


지우와 처음 밤을 함께 지낸 날. 샤워를 하고 나온 그녀의 몸은 현상액에서 막 건져내 아직 건조되지 않은 인화지처럼 번들거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36.5°c였던 나의 체온은 그녀의 체온으로 인해 73°c를 넘어 100°c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 몸에 난 상처를 보았다.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 상처. 내 팔을 베고 누워 있던 지우는 처음으로 나의 과거에 대해 질문했다.


“이 상처는 뭐에요?”

“별거 아녜요.”

“상처가 이렇게 큰데요?”

“사진관 개업하기 전에 사고를 당했어요.”

“어떤 사고요?”


나는 침묵했다. 진실을 말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우물쭈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아가자고 했잖아요.”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서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어요. 난 그 여자밖에 모르는 바보였고, 그 바보를 그 여자는 실컷 이용해 먹다가 싫증이 났는지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거의 매일 술을 먹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술을 잔뜩 먹고 운전을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가 나버렸고, 목숨은 건졌지만 이렇게 몸에 상처가 남았어요.”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지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내 얼굴을 잡고 자신의 가슴에 파묻으며 말했다.


“그 상처 평생 지워지지 않겠네요. 몸에도 마음에도.”


나는 그런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말했던 거짓말이 마음에 걸려 그녀가 잠들고 난 한참 후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 거짓말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길 바라면서.


(Part.2 끝, Part.3에서 계속)

by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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