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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Day May 01. 2023

[창작소설] 기억, 지옥 (3부)

송지범 단편

기억, 지옥 (3부)

- 송지범



핸드폰을 닫고 사진첩도 덮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가방에 집어넣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지우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삼일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술만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했다. 배라도 좀 채우기 위해 공원을 나와 편의점을 찾았다. 그녀는 밤늦게 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편의점을 자주 이용했다. 나도 남의 눈에 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밤에 만나자는 그녀의 부탁을 달갑게 받아들여다. 하지만 이주 전쯤에는 낯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지우가 유나를 만났다고 고백했을 때, 나는 순간 멍해있었다. 유나는 어떻게 지우의 존재에 대해서 알았을까? 그리고 지우에게 어디까지 얘기했을까? 설마 지우가 나의 거짓말 때문에 나를 버리지는 않을까? 여러 생각들이 번져버린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잘 찍은 사진에 상이 맺힌 것 같았다. 무수히 많은 궁금증들을 차마 지우에게 꺼낼 수가 없었다. 


지우에게 왜 나에게 먼저 말하지 않고 유나를 만났냐고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되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숨기고 싶었다. 지우를 실망시켜 우리사이를 멀어지게 하기는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그녀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희생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게 그녀가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할 거에요?”


나는 그녀와 헤어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무조건 그녀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헤어지자고만 하지 마.”

“나도 헤어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녀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며 계속 물만 홀짝 거리고 있는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여자, 애인이 있어요.”

“그럼 원하는 게 뭐야?”

“돈 얘기밖에는 안하더군요.”

“내가 유나한테서 가져 온 돈? 그걸 원했어?”

“아니요. 지금 당신이 가진 전부.”


2층짜리 집. 이것이 내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것을 처분 한다는 것은 집과 직장을 모두 잃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집과 직장 없이는 살아도 이 여자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당신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더군요.”

“생각 할 시간을 줘.”

“그렇게 전하죠. 그럼 연락 기다릴게요.”


그렇게 쌀쌀맞은 그녀는 여태 본적이 없었다.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마음이 급하다보니 헐값에 집을 처분했다. 일주일 뒤 그 자리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 유나에게서 가져간 돈을 만들기 위해 내 집이자 직장인 2층짜리 건물을 처분한 통장을 건네면서 그녀를 쳐다보았을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장난감이 싫증난 꼬마처럼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우유 하나를 먹고 나자 비로소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깨에 메고 있던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까 피려다가 말았던 담배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가방 구석에 있는 놈을 겨우 찾아내었을 때 그 밑에 깔려 있는 팸플릿 하나를 발견했다. 내 사진이 전시 되어 있는 전시회의 팸플릿이었다. 


그녀는 삼일 전 내게 이별을 통보하고는 이 팸플릿 하나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버리는 이유는 나에 대한 신뢰가 깨져 더 이상 나를 믿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의 손을 잡고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잡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음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지우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일까? 


죄 값을 받은 건지 결국 내가 했던 거짓말과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담배를 물었지만 그저 헛웃음만 몇 모금 뿜어져 나왔다. 집도 직장도 사랑도 잃어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자살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나는 실행에 옮길만한 용기도 없는 남자였다. 나는 여태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본 적이 없었으니까. 



지우가 나를 버린 그 날, 사진을 태워버려 그동안 생각이 나지도 않던 유나가 생각났다.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한국에 오자 부모님이 사진관을 차려 주었지만, 나는 음악과 클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1년쯤 지나자 나같이 음악과 클럽에 정신이 팔린 친구들이 새로 생겼는데, 유나는 그 새로 생긴 친구들이 소개 시켜준 여자였다. 서로 마음이 맞아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곧 연인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는 여행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녔고, 그러다 보니 사진관은 제대로 운영될 리가 없었다. 결국 사진관을 처분하게 됐지만 그래도 유나가 있다는 것으로 위안이 되었다. 사진관을 처분하던 날 평소보다 과하게 술을 마신 후 운전하지 말라는 유나를 뒤로 하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유나는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술 많이 먹었는데 괜찮아?”

“괜찮아. 걱정 하지 마.”

“얼굴이 빨간데?”

“더워서 그래.” 


차창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미지근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다. 나는 그 미지근함이 싫어 속도를 조금 더 냈다.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바다나 갈까?” 


유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생글거렸다.


“바다 좋지!” 


그녀는 나에게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유나와 손을 마주치기 하기 위해 보조석 쪽으로 고개를 돌린 후 한손을 들어 올린 순간 핸들을 잡고 있던 한 손마저 놓치고 말아 가드레일과 부딪히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피투성이가 된 유나는 나를 끌어안은 채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었고 나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병원에 실려 가서 며칠 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나를 보고 나는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나를 우걱우걱 삼키려고 하자 결국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병원 밖을 뛰쳐나왔다. 마치 사고로 다리나 손을 잃은 장애인처럼 나도 내 몸의 일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살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나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날, 내 손에는 그녀의 자취방에서 가져온 통장이 쥐어져 있었다. 두 번째 사진관은 그 돈으로 개업한 것이었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혹시 그녀나 그녀를 아는 사람과 마주 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로 노인들이 살고 있는 삼청동을 선택했다. 


유나를 떠나고 1년 동안 사진에 미쳐있었다. 그게 유나에 대한 기억을 잊는 또 한 가지 방법이었으니까. 여러 가지 나만의 기술도 익히고,마케팅 관련 공부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처음 사진관을 차렸을 때 보다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원래 살던 집을 팔고 사진관이 있던 건물의 2층까지 사버렸다. 1층은 작업실, 2층은 살림집으로 리 모델링 했다.


한집에서 살림과 일을 할 수 있게 된 내가 밖에 나가는 일은 드물었다. 사고 후 그나마 있었던 친구들과 모두 연락을 끊었고, 그래서 내게 친구라는 존재가 없었다. 기억에서 잊혀진지 오래였다. 자존심 때문에 외국에 계신 부모님께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냈다. 지독하게 고독했고, 눈물 나게 외로웠다. 고독과 외로움에 허덕이고 있을 때 누군가 나의 등을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자 지우가 거기 있었다. 


(Part.3 끝, Part.4에서 계속)

by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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