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움파

by 박재옥

교단에 서 있던 시간이 멀어 보이지만 가깝다

겨울 움파가 자라는 시간 같다


향기로운 분필 냄새에 취해서 소리 없이 한 생이 흘러갔다

심각하게 어려운 문제는 없었지만 그리 쉽지도 않았겠지?


시련에서 달관으로 강해지는 생명이란

안으로 굳어지는 내핍인가

아니면 밖으로 돌출하는 결단력인가


스스로 내리는 형벌인 듯

나의 종아리를 때리는 무욕의 회초리


베어낸 상처의 자리에서

허연 진액이 흘러나와 움을 틔웠다 <


여린 햇빛과 한기 寒氣 로 키워낸 줄기는

연약해 보이지만 단단하구나

생명 눈이 얼음처럼 살아있구나

저토록 순백한 여백으로


누가 교직을 강요한 적 없었지만

묵묵히 걸어가야만 했던 길이었을 것이다


운명이었을 것이다


내 누추한 정신의 텃밭에 꽂아놓은 푸른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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