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물

by 박재옥


마른 잎사귀 툭툭 털어낸 겨울나무가지들이

추운 하늘을 배경으로 그물망이 촘촘하다

겨울나무는 하늘을 낚아 올리려고

나이테로 늘여온 시간의 그물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로 영혼이 자유로운 바람 지나가고,

순례 중인 구름도 느릿느릿 걸어간다

오랜 명상이 그물을 깁는다

동면하고 난 개울 물길이 제 나름의 무늬 만들고,

나이 든 잔주름의 그물이 달관의 파장을 일으키듯이


우수(雨水) 지나고 북으로 귀소 하는 가창오리 떼

새들이 끌고 가는 그물 틈새로 엿보이는

하늘의 맨살이 아직은 시리다

새들은 얼마나 더 식구 늘려

넉넉해진 그물을 엮어서 귀향하고 있는 것일까

새들이 떠난 텅 빈 들녘,

지상의 그림자 적막해지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살가워진다


그물은 저마다의 생이다

저마다의 시(詩)이고 철학이다

돌아보면 지나온 길 위에다 부려놓은 나의 그물은

얼마나 터진 상처들을 부여잡고

여기까지 끌고 오게 된 것인지


저마다 생의 그물을 짊어지고

힘겹게 가고 있는 세상의 저녁,

서산마루엔 지는 해가 붉은 그물을 커다랗게 던져놓고서

새봄을 한창 산고(産苦)하고 있는 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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