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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황태

by 박재옥


부산역 대합실에서 노숙중인 황태를 본다

잠에 취해 헤벌어진 입안에는

코 꿰어 내걸린 진부령 덕장의 허공이 매달려 있다

그들도 눈보라를 견디며 매달린 순교자처럼

종일토록 훈련 받고 서 있는 신병들처럼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터진 상처가 다시 아무는 동안

보들보들한 노란 속살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사는 게 고단한 참선이었으리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누군가 먹다 남긴 자장면이 없는지

어느 어두운 사무실 복도 앞을 스쳐갔을 그들에게도

오호츠크 해 검푸른 물속 같은 집이 있었을 것이다

한 때는 누군가의 든든한 처마였으리라

악몽처럼 던져진 원양어선의 그물을 만나기 전까지는

바위 뒤에서 사랑을 나누며

양떼 같은 자식 몰고 헤엄쳐 다녔을 것이다

여기까지 온 것은 다만 운이 없었거나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였을 뿐

이력서 써 들고 가는 곳마다 초라한 행색으로 퇴짜 맞으며

가슴에 얼음송곳을 박고 뒤돌아 설 때

우르르 별 같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나타나는 벽들은 너무 높았고,

구원의 태양은 너무 멀리 있어서

거듭되는 굴곡을 안으로 삭이며

속살이 겨자처럼 노릇노릇해지도록

못난 자신을 완성시켜 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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