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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된장

by 박재옥


홀로되신 어머니는 적막한 끼니를

된장 한 숟가락에 풀어 드신다

찬기 도는 방안에서 어머니와 마주앉아

된장찌개를 퍼먹으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운다

흉흉한 맛의 굿판이다

된장찌개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도

구수한 냄새의 사신을 따라 나와 곁에 계실지도 모른다

상처를 보듬는 약으론 이만한 게 없다


옥상 장독대로 된장을 뜨러 가보면

묵은 된장 위에는 해마다 햇 된장이 포개져서

세월의 외투를 껴입고 있다

깻묵처럼 시커먼 묵은 된장은

씁쓸하면서도 감차처럼 달다

콧물 비치고 으슬으슬 감기가 찾아오려 할 때마다

사나흘 죽치고 앉아서 퍼먹으면

저만치 물러나곤 한다

이처럼 귀 밝고 영험한 부적이 따로 없다


아버지가 된장찌개를 드셨던 자리에서

대신 앉아 먹는 세월의 밥상머리

보글보글 끓는 소리 들으며

어머니는 시집살이 곁방 살던 눅눅했던 시간과

쌀알처럼 떨어져있을 웃음을 줍고 있을 것이다

먼 신방(新房)처럼 황홀한 냄새 맡다 보면

곁에 서있는 적막조차 잊을 만하다


집 된장은 눈물의 가계(家系)다

무언의 눈빛으로 투명한 계보를 우리는 알고 있다

적막은 적막으로 견뎌야 한다

소란으로 넘는다고 넘어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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