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여민 궁핍의 검은 보자기 걷어내고,
오래된 옹기 시루에 물을 주다보면
콩나물 환하게 내밀은 민대머리가
툭하면 감기 잘 걸리는 내 새끼들 같고,
뒷머리가 가엾은 암 병동의 현진이 같다
핍진(乏盡)의 하루하루
현진이 약 먹는 시간처럼 간곡하게 물을 주면서
짓무른 한숨을 푹푹 내쉬지만
때로는 슬픔도 의욕의 잔털을 만들고,
윤기 나는 노란 생명의 물길을 차오르게 한다
사는 게 늘 팍팍하지만
비릿한 것들, 키 크는 거 보면
각오가 남달라진다
잘 자라 거라, 불우한 연민의 새끼들아!
부실한 몸 추스르고 학교 잘 다니거라
빛이 아닌 어둠으로 키우는 너희들이지만
꿀꺽 꿀꺽 물 넘기는 소리 청량하고,
잔발들이 동동거릴 때
노란 건반 머리통을 지그시 눌러주고 싶구나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콩나물시루가 키워온 목숨이 얼마인가
아빠도 콩나물의 전설을 먹고 자랐다
약한 것이 꼭 약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슬픔의 암실에서 건져다가 저녁 식탁에 차려놓은
콩나물은 씩씩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