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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의 전설

by 박재옥


꼭꼭 여민 궁핍의 검은 보자기 걷어내고,

오래된 옹기 시루에 물을 주다보면

콩나물 환하게 내밀은 민대머리가

툭하면 감기 잘 걸리는 내 새끼들 같고,

뒷머리가 가엾은 암 병동의 현진이 같다


핍진(乏盡)의 하루하루

현진이 약 먹는 시간처럼 간곡하게 물을 주면서

짓무른 한숨을 푹푹 내쉬지만

때로는 슬픔도 의욕의 잔털을 만들고,

윤기 나는 노란 생명의 물길을 차오르게 한다


사는 게 늘 팍팍하지만

비릿한 것들, 키 크는 거 보면

각오가 남달라진다

잘 자라 거라, 불우한 연민의 새끼들아!

부실한 몸 추스르고 학교 잘 다니거라


빛이 아닌 어둠으로 키우는 너희들이지만

꿀꺽 꿀꺽 물 넘기는 소리 청량하고,

잔발들이 동동거릴 때

노란 건반 머리통을 지그시 눌러주고 싶구나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콩나물시루가 키워온 목숨이 얼마인가

아빠도 콩나물의 전설을 먹고 자랐다

약한 것이 꼭 약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슬픔의 암실에서 건져다가 저녁 식탁에 차려놓은

콩나물은 씩씩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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