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러브앤인포메이션 공연에 재엽쌤이 오셨다. 공연마치고 나가는 길에서야 오신 걸 알고 인사드렸다. 쌤은 공연 재밌게 잘 봤다고 요즘 시대의 모습들이 공연에서 많이 보여서 흥미로웠다고 하셨다. 그리고 주협이 잘 하네 말해주셨다. 잘 나아가고 있다고.
사실 재엽쌤의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다. 강의실에서 마주친 기억은 연출실습, 창작콜라보 발표 도와주러 갔을때나 학교공연에 지도교수로 쌤이 배정되어 들러주실 때 정도였다. 어쩌면 레파토리 공연 모모에 참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당시 더 이주협다운 선택이라고 느껴졌던 에잇라운드에 지원했기에 공연의 연도 맺진 못했다.
그치만 쌤은 은근 나의 연기를 많이 보신 분이다. 일단 학교에서 했던 스튜디오급 이상의 공연은 쌤이 다 보신걸로 알고 있고, 장면 발표 같은 것까지 합치면 학교에서만 열번가까이 내 연기를 보셨을테다. 거기다 밖에서 하는 공연도 이제는 몇 번 보신 셈이니. 어쩌면 재엽쌤은 은근 내 연기자의 가장 잦은 목격자(?)이실 거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 말이 참 고맙고 좋았다. 나의 성장을 어쩌다보니 열심히 봐주신 쌤께서 내 노력을 들여다봐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재작년 모모 뒷풀이였나 거기서 잠깐 인사드렸을때 지나가는 말로 연기잘보고 있다고 처음으로 편하게 말해주셨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로 쌤을 좀더 편하게 대할 수 있어 좋다.
알리바이 연대기를 좋아한다. (여전히 충분히 불편하지만) 아버지가 힘들게 느껴지던 시절 알리바이 연대기를 읽고 조금의 힐링을 얻었다고 해야할까. 내 입장에선 부럽기도 했고. 암튼 알리바이 연대기가 공연이 되던때에는 연극에 별 관심이 없어 희곡으로만 읽었다. 깐돌이와 나는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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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의 시작은 11월 중순쯤이었고 이 글을 다 적은 11월 18일 깐돌이와 나 관람 성공. 깐돌이와 소영배우님에게 즉각즉각 반응하는 맨 앞자리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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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량원 쌤은 2021년 플레이업아카데미에서 뵈었다. 그 유명한 '신체행동으로 설계하는 연기기술' 수업 (현재는 아르코 극장장으로 근무하고 계셔셔인지 개설되지 않고 있다. 내가 현재까지의 마지막 기수. Lucky). 쌤을 선생님이라 부른 시간은 한달 남짓 짧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던 탓에 실제로 뵐 땐 아주 어색하지만 쌤이 주신 영향은 그 이후 계속되고 있다. '하는 것'과 '되어지는 것'의 차이, '의도'와 '작용'의 차이, '재현'과 '그럴수밖에 없는 것'의 차이는 내 기준에선 꽤나 큰 인식의 다른 방향이다. 연기 단위에서도 그렇고 연출 단위, 공연연습 단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절대적 진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바라봤던 연극의 세계보다 훨씬 안전하고 본질적인 방식의 접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특히, 이 이후에 다시 한번 다루겠지만, 재현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는 공연을 보거나 그런 환경에 내가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땐 꽤나 괴롭다. 그런 의도로 만드는 건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배우의 표현과 발산에 의존해 인물의 전형만 보여주는 그런 순간들은(모든 공연 말고 그러면 안되는 공연에서! 충분히 허용되는 공연이 있고 그러면 안되는 공연도 있잖아) 프로덕션 입장에선 당연하고 배우 입장에서도 숙고해봐야 한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다. 파트너와의 소통이 막힐때 혹은 내가 연기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지 않나 싶은 순간에 리프레시의 방법을 제시하고, 전반적으로 작품을 대하는 생각의 회로 측면에서 보다 필연에 가까운 길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솔직히 (그렇게 받아주시지도 힘들겠지만) 기회만 된다면 한번만 더 수업을 들어보고 싶다. 온라인 수업으론 1인 연기밖에 할 수 없다 보니 어떤 한계가 존재했을 것이다. 막상 수강할땐 선생님의 집요함과 예리함에 살짝 서운하기도, 반발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매순간이 꽤나 즐거웠고 끝나고 나서는 생각나는 순간이 너무 많아 더더 좋았던 수업이다. 나는 스스로를 새시대의 연극인이라 생각하는데(?!), 내 동료들 중 량원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사실 쌤께 사석에서 인사를 제대로 드려본 적이 없다. 워낙 공연을 많이 보시니 내가 참여한 공연이든 타인의 공연이든 공연장에서 멀찍이 뵐 때가 종종 있었고, FBW때는 보러오신게 너무 잘 보여 공연 끝나고 동료들과 함께 나갔지만 그때도 홀연히 숑 사라지셨다. 그래 이렇게 적은 걸 보니 이번에 마주칠 일 있으면 꼭 좀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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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메디아 보러 가서 쌤과 마주쳤다. 글쓴지 며칠도 안됐던 때라 내 글에 적은 다짐은 지켜야지 하며 야심차게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재작년에 플레이업 들었던 주협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꼭 한번 인사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 네~~"
3초간 어색한 침묵
"그럼 공연 재밌게 보세요~~"
"네 선생님 재밌게 보세요"
인사한 건 좋았지만 역시 어색함은 힘들다. 다음에 또 인사드려야지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