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앤 인포메이션'이 끝나가고 있다. 공연 자체도 그렇지만 지인들의 반응을 보는 면에서도 재밌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어떤 이들은 굉장히 흥미로워했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은 솔직하게 어려웠던 기분을 공유해주었다. 확실히 내가 했던 공연 통틀어서 가장 호불호가 양분되는 공연이다. 그렇다면 그 호불호는 어디서 갈리는걸까? 여러지점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공연은 그 지점이 꽤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완성도나 텍스트 장면구성 등 창작진이 제공하는 요소가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공연을 어떻게 관람하고 싶은지, 어쩌면 그게 이 공연의 중요한 컨셉이자 질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 스스로가 어떻게 공연을 관람할 것인지'는 이 공연을 '이런 식으로 관객이 따라오게 만들어야지' 혹은 '이것도 어려워하면 관객 너 촌스러' 과 같은 메시지적 방향이 아니라, 그 맞은편에서 '너가 이렇게 관람해도 괜찮아' '아무 생각들을 해도 좋아' '듣고 싶은걸 듣고 보고 싶은 걸 봐' 에 가까운 방향성이라 생각한다. '무얼 이야기할지' 보다는 <무엇이 당신의 주관적 의식과 만날 수 있는지>, '이야기속에서 무슨 함의를 찾아야할지, 뭘 판단해야할지'보다는 <내가 의미있다고 생각한 그것이 맞는지?,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현상(그것이 젠더와 인종 등의 사회이슈든, 타인들과의 관계맺음에 관한 것이든, 연극에 관한 가치판단이든, 혹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든) 이 정말로 옳은지? 내가 믿고 싶어하는과 믿는 것이 정말로 합당한지?> 에 가깝게 만드는 방향성이라 생각한다.
의미로서의 텍스트보다는 이 텍스트의 이미지화, 각각의 장면들보다는 순서가 지정되지 않은 장면들의 배치를 통한 컨셉, 컨셉보다는 이 공연의 형식과 문법 그 자체로써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등 각 단위마다 깃들어있는 역질문 혹은 전복성.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자 질감이라 느낀다.
하여 이 공연을 보러 오신 분들 중 이 글을 읽는다면, 당신이 이 공연을 즐겁게 향유했다면 그건 그자체로써 너무 감사하고 훌륭한 일이고, 혹여 이 공연을 힘들게 봤다면 그 또한 미안하지만 능히 그럴만한 일임을 말해주고 싶다. 모든 이에게 닿는 공연이 어디있겠냐만, 모든 이에게 닿지 않아도 됨을 감안하는 공연도 있다. 그리고 아마, 더 많은 이들에게 닿으려고 했다면 다른 지점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다 흥미를 못 느끼는 방향으로 공연이 구성됐을 것이다. 나는 참여자로서 지금의 우리 공연이 정답에 가까운지는 몰라도 흥미로운 대답 중 하나를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구조의 희곡이었고 그걸 추구하는 순간 이 텍스트를 대하는 자세부터 텍스트와 위배되지 않나 싶었다.
아주 개인적으로는 사실 조금 더 비사실적이고 불친적한, 물성에 가까운 관념과 이미지만 남는 공연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또한 내가 생각했던 나만의 주관식 답중 하나고 지금의 공연화 된 버전 역시 채택 가능한 무수히 많은 선택지와 컬러 중 하나일 것이다. 아, 물론 여기서 선택지와 컬러라는 말은 일반적인 드라마연극 혹은 양식성이 정확히 보이는 연극에서 말하는 정도보다 훨씬 더 많은 지점과 사이사이의 그라데이션에 관한 이야기다. 경험했던 텍스트 중 이만큼 갈래가 무수히 많은 이상한 희곡은 처음 봤고(젠더X 성별X 지문X 장면순서X 섹션순서X, 존재하는 단 한나는 장면제목과 대사들O) 우리는 그 지점들 중 우리가 커버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서 구현한 것일 뿐. 다만 한정된 시간 안에서 열심히, 시대성을 생각하며, 창작진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활동에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화의 양심을 담아서 만든 것 같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어쨌든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거다. 잘 봤다는 말들 속에서도 비판적인 말들 속에서도 어느때보다 '각 사람마다의 논리성과 합당함'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로 틀린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이 당신의 뜻대로 가능함을, 혹은 뜻대로 가능하지 않더라도 의미 있음을, 의미가 없어도 당신만 괜찮다면 괜찮음을 말하고 싶다. 주관적 감각을 많이 사용하는 공연이 주관적인 누군가와 만났을 뿐, 때때로 어쩌면 그냥 그런 거 아닐까.
+
이또한 개인적 해석이지만, 상당히 분명하게 공연에 등장하는 키 코드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것에 대해 정말로 알고 있는게 맞는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 '내 기준에서 안다고 하는 행위가 정말로 타 대상을 이해하는 행위인가' '대상의 표피만을 보고 정작 대상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을 기울이는가' / '나는 내게 오는 정보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가' '컨트롤한다고 믿고 싶은 것 아닌가' / '상대방을 지목한 손가락을 내게로 돌려 스스로를 볼 수 있는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갈등과 혐오로 빠지지 않는가' / '내 해석 밖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감각으로서 수용할 수 있는가' 등
이 코드는 따라서 이 작품에 한해서,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도 유효한 질문이고 관객들 입장에서도 유효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메타적으로 이 연극의 형식에 관해서도 말이다. 만드는 사람들은, 보는 사람들은 이 정보들을 주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한다고 해도 그게 정말로 이해하는 행위일까 이해한다고 믿고 싶은 걸까. 그 모든게 섣부른 과신 아닐까. 내 인지 바깥의 정보들에 대해서 논리보다는 감각을 섞어 대면할 때 그제서야 우리는 그 정보의 본질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나. 그럼에도 수용해보고, 그렇지만 다시 질문해보고, 또다시 그럼에도 수용해보는 반복들 속에서 파장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사고의 편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프로그램북이 있다. 뒤늦게라도 이 공연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프로그램북을 보면 몇몇 힌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힌트들보다 흥미로운 건 각 배우들의 배우노트 아닐까 싶다. 다른 배우들의 배우노트를 보며 공감이 된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몇몇 구절이 참 이공연에 부합한다고 느꼈다. 더불어 내 배우노트에 적은 마지막 두번째 문단 역시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아주아주 주관적이고 미시적인 순간들이 예상치 못한 딴생각을 만든다면, 더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