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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선의 구토

그러니까, 적당한 것이 가장 어려운 거 같아. 난.

by 세진

구토를 했다.

요즘따라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계속해서 탈이 난다.


어제는 한 끼 먹고 계속 설사를 했다.

그래서 어제는, 11시에 한 끼 먹고서는 쭉 굶었다.


이후 다음날 아침으로 진짜 조금 먹은 떡볶이.

그리고서 입맛이 없어 계속 굶다가,

너무 배고파서 사골곰탕에

만두를 넣어서 끓여 먹었다.


그게 문제였다.

너무 배고플 때, 만두를 먹은 것.


작은 물만두였다 보니까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게 되었다.


원래라면 만두를 베어 먹거나,

천천히 씹었을 거였다. 그러나

오전 10시에 먹고 6시까지 쭉 굶었다 보니...


작은 물만두를 그냥 삼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 먹고 나서야...


'어.'


'이거 너무 심하게 체한 거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급히 소화제 알약을 2알이나

먹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구토를 많이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끔은 소화제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체기가 있다.


결국 나는 10분 정도 기다려보다가,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손가락을 집어넣기에는 무서워서,

칫솔을 넣어서 구토를 했다.


평소라면 헛구역질이 나올 때쯤

쏟아져 나왔겠지만

오늘은 심하게 체했는지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다 토해냈다.


그렇게 한 번 심하게 토하고 나서

또 한 번, 일부러 칫솔을 넣고 토를 했다.

두 번 토를 하고서 양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한 속.

결국 다시 들어가서 구토를 했다.



여기서 문제점이 있었다.

거하게, 과하게 토를 하고 나서,


'대체 언제까지 토를 해야 되는 걸까?

대체 언제까지 칫솔을 넣고 토하는 행위를 해야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적당한 선의 구토.


나는 적당한 선의 구토를 잘 못하는 편이다.


위액이라고 해야 될까,

끝까지 나오는 걸 보고 나서야 토를 멈춘다.


그럴 때면 고생한 목과 명치, 온몸이 다 아프다.


사실상 구토의 필요성은 모든 것을

토해내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적당하게 토를 했으면,

그 이후로는 소화제 같은 걸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토하고 나서 남아있는

잔여의 체기가 더 무서웠다.


그러기에 억지로 한 번,

다시 한번. 더 구토를 하며 적당한 선을 넘는다.


이제 도저히 못한다고 항복을 할 때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오면,

남아있는 건 아픈 위와 목이다.


나는 구토하는 걸 굉장히 괴로워한다.


남들도 괴로워하겠지만,

나는 그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구토를 할 때 나오는 눈물과 콧물이,

내가 괴롭다는 걸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는 거 같아서.


그래서 나는 구토를 시작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한다.



구토를 할 때 흐르는

눈물과 콧물 외에도

'어디까지 토해야 될지

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마음'이 버거워서,

구토를 무서워한다.


적당한 선의 구토를 안다면,

이러한 괴로움도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적당한 선의 구토 기준을 몰라서,

남아있는 체기가 두려워

매번 모든 것을 토해낸다.


남은 것은 속의 편안함이지만,

그만큼 따라오는 목과 위의 고통은

가히 말하기 어렵다.




적당함.


적당함의 선은 언제나 어려운 거 같다.

과한 구토는

내 속을 편안하게 해 주지만 몸을 해롭게 하고,

약한 구토는

남은 체기로 인해 '토해야 되나'라는

고민에 빠지게 한다.


그러한 것을 해결해 줄 적당선의 구토.


적당선의 구토를 나는 언젠가 깨우칠 수 있을까.


눈물을 닦으면서, 지친 나의 명치를 눌러주며 그렇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어렵겠지.


그럼에도 나를 위해,

나의 편안함을 위해

가장 두려워하는 '구토' 행위를 한

나에게 칭찬해 주기로 한다.


어쩌면 이건 구토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적당함을 몰라

과하게, 혹은 적게 행동하는

우리의 모든 행위들.


그리고, 그 행위를 할 때

우리는 겁을 먹기도 한다.


그럼에도 용기 있게 그 행위를 한 우리에게

잠깐의 토닥임 정도는 허용해 주자.


그다음에,

적당선을 찾자.


적당함의 구토.

오늘도 나는 이 고민을 미뤄둔 채

후련해진 위와 함께 한다.


적당한 구토의 기준은

다음의 나에게 맡기기로 하며

오늘도 미룬다.


오늘의 후련함만 만끽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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