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는 특히 그 사람의 본연의 실력이 중요한거란 걸, 왜 모를까.
집 근처에는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떡볶이집이 있다.
원래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떡볶이 집이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그 떡볶이 가게의 단골이었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떡볶이 집은
티비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교양 프로그램에서 한 번,
심지어 예능에서까지 한 번.
총 두번의 연속 출연 덕에,
마을 사람들이 아닌
타인들까지 방문하는 맛집이 되어버렸다.
이 떡볶이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건
매콤하고 달달한, 그럼에도 매콤함이 더 강한
정겨운 맛의 떡볶이였다.
그래서, 가끔 오래 기다리고서라도
구매하였는데...
티비 출연 후,
묘하게 짠 맛에 인상을 매번 찡그렸다.
이 때부터 초심이 바뀌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훌훌 털고 넘어가줬다.
그러던 중, 사건은 어제 일어나게 되었다.
어제
외출을 하셨던 엄마에게
떡볶이를 사다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엄마가
오셔야 될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떡볶이집인데 잠시 끊으라고 하셨고,
엄마는 기분 나쁜 상태로 집에 귀가하였다.
바로 떡볶이를 비조리로 포장해서 준 것이다.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를 비조리로 포장해서 주다니.
사실, 인기가 실감난 그때부터
이 떡볶이 가게는 비조리라는 옵션을 만들어놓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끔씩 방문할때도
30분을 기다리거나 비조리로 포장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 했었다.
그럴때마다 난
다음에 먹을게요. 하고 나왔다.
떡볶이 집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비조리"를 권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내가 비조리를 원했다면,
굳이 떡볶이 집을 방문해서 갈 필요가 있을까?
그런 묘한 의문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가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런데, 어제 사건은 이랬다.
엄마는 조리를 한 떡볶이를 원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조리가 된 떡볶이도 잔뜩 있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와 다른 타인들에게
"조리가 잔뜩 된 떡볶이는 예약이 되어 있다."라며,
떡볶이를 구매하고 싶으면
"비조리"를 구매하라고
하나의 선택지만 제시한 것,
엄마와 다른 타인들은 화를 내며 가게를 나왔고,
엄마는 고민 끝에
딸이 그렇게 먹고 싶어하니
"비조리" 떡볶이를 구매한 것이다.
엄마는 그 사장에게 한 마디 하고 나왔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비조리를 권하는게 옳은거냐고.
사장은 미안한 눈치의 눈빛으로 보았다고,
죄송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엄마는 앞으로
이제 이 가게를 가지 않을거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비조리로 포장된 떡볶이를 건넸다.
나는 다른 요리는 어느정도 잘 하는지 모르겠지만,
떡볶이를 만드는 건 정말 못한다.
떡 안에 떡볶이 소스를 스며들게 하는 방법을 모른단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
떡볶이 집을 방문하는건데.
재료랑 소스가 같다고 해서
그 떡볶이 본연의 맛이 나오는 것이 아닌데
왜 사장은 그걸 몰랐을까.
툴툴 거리는 마음으로
떡볶이를 끓였다.
그 사장의 말을 빌리면
"물을 300ml 넣고 끓이면 똑같다" 라고 했지만,
신기하리만치
다른 맛이 났다.
그렇게 나는 툴툴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떡볶이를 비웠다.
포장지를 정리하면서,
바뀌어버린 매장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음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떡볶이는 재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만드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비조리된 음식을 원했다면,
마트를 갔을 것이고
마트에서 기분 상할 일 없이 구입했을 것이다.
내가 떡볶이를 잘 만들었다면,
굳이 떡볶이를 만들어서 파는 가게에 방문해서
비조리를 샀을까.
가게 사장은 정말 그걸 몰랐을까.
아니면, 아쉬운 발걸음을 적적하게나마
달래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으로,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
"비조리"를 권하게 된걸까.
아마 사장은 몰랐을 것이다.
손님들이 왜 가게에 방문하는지.
적어도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이 만든
떡에 소스가 잘 절여진
떡볶이를 먹고 싶어서 방문한 것이다.
요리를 잘 못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보통
포장을 해서 사올텐데.
아쉬운 발걸음에 "비조리라도 사갈게요" 라는
몇몇 의견을
너무 대중의 의견으로 받아들인 거 아닐까.
엄마는 테레비전에 나오기 전 떡볶이 가게를 떠올렸다.
"그때는 저런 태도가 아니었아."
엄마는 그렇게,
단골 떡볶이집을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모습에서 무언가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아쉽다 못한
쓰린 마음으로
비조리의 떡볶이를 끓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재료더라도
어떻게, 누가 가공하면서 끓이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떡볶이도 그러하다.
우리는 똑같은 재료임에도 잘 가공하는
"나만의 맛집"을 찾아서
즐기고, 감상하고, 섭취한다.
그리고, 그렇게 방문한 곳이
초심을 잃지 않은 일정한 태도일 때
우리는 언제나 방문하게 되어있다.
사장은 정말 몰랐을까, 모른척 했을까.
굳이 그것에 대해 파헤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똑같은 재료여도, 그 실력으로 끓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비조리를 당연하게 권하는 태도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초심을 잃었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실감한 날.
초심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타인에게 해로울 수 있는지.
여러번 생각해보게 하는 날이었다.
적어도 나는,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감사하게 살아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떡볶이를 끓였다.
끓이면서도 다른 농도.
똑같은 재료여도 이렇게
결과물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는 걸 아는데.
대체 왜 그랬던걸까.
어쩔 수 없이 끓인 비조리의 떡볶이.
결국 억지로 먹고는 치워버리고 만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묘하고 툴툴거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단골 손님을 잃은
가게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