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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 부드럽지만 뭉개지지 않는.

달콤하고 부드럽지만 그만큼 강한 키위

by 세진




골드키위, 초록키위

모든 것이 섞여 있는 그릇을 가만히 본다.

그 중에서 포크로 골드키위를 집어본다.

포크를 빙빙, 돌려보며 살펴본다.

적절하게 놓여진 씨앗과

노오랗게 익은 맛있는 과일.



포크로 한 입 찍어 한 입 베어문다.

달콤한 맛과 함께 퍼지는 신맛.

그럼에도 신 맛이 가려질만큼 맛있는 달콤함.

과일을 잘 먹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찾는 과일.

부드럽고 달콤하고, 신 맛으로 과일임을 인지시키지만

그럼에도 달콤함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맛.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키위 같은 존재면 좋겠다.

부드럽게 넘어갈 만큼 말랑하지만,

결국 꾹 눌러도 터지지 않을만큼 강인한 키위처럼.






요즘 내가 먹는 과일은 오직 키위밖에 없다.


시작은, 엄마가 알뜰코너에서 사온

키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알뜰코너에서 사오는 과일은 상하기 직전,

즉 판매하기에는 가치가 낮아진 과일들이 많다.


이제는 과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기 전 ,

마지막으로 판매하는 과일인지라

대체로 물렁한 편이다.


즉, 상하기 직전이며

판매하기 어려운 과일이라는 것.

하지만 난 워낙 어린시절부터

딱딱한 과일은 먹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난

알뜰코너의 과일이 더 입맛에 맞을 때가 많았다.



젊은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든 이들의 논쟁.


물렁복숭아냐, 딱딱한 복숭아냐의 논쟁에서도

난 언제나 물복. 즉 물렁한 복숭아의 편을 들어주었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시절부터,

나는 물렁한 과일만을 과일이라고

인지하고 살아온 거 같다.


물론 부모님은 딱딱한 복숭아를 더 즐겨하고,

딱딱한 사과를 권하고,

딱딱한 키위를 권하고

모든지 싱싱한 과일을 내세우며 가져다 주셨지만

철 없는 딸은 그저 먹지 않고

"말랑한 것만 먹을래" 라고 하며

과일 자체를 먹지 않았다.


그러기에, 엄마가 사온 "알뜰코너"의 키위는

상품 가치가 전혀 없는 상하기 직전의 과일이 아닌,

오히려 내가 먹기에 가장 적절한

"말랑"의 정석 키위가 되었던 것이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할인표를 떼고 과일 포장지를 뜯어보았다.

키위의 겉 면을 꾹 눌러보았다.

푹, 들어가며

누가봐도 이제는 더 이상 판매할 수 없는 과일.

하지만 나는 이 푹 눌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의

숙성도라는 것을 알아서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많이 달고, 부드러울까.

부드러운 과일을 한 입에 넣어서 입 속에서

녹여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가장 좋은 성숙도인 것이다.


그렇게 연속으로 키위를 먹은지 어느날,

엄마는 다른 마트에 가서

골드키위가 아닌 초록 키위를 사오셨다.

알뜰코너가 아니라 정석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과일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아주 딱딱한 키위를.


엄마가 이 키위도 맛있을거라며,

물렁한 것만 먹지 않고 이것도 먹어보라며

콧노래를 부르시며 깎아주셨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아 키위를 꾹 눌러보았다.

손가락이 키위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너무 딱딱해!


"실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엄마와 함께 한 입 먹었다.


음, 진짜 시네.

엄마와 나는 동시에 바라보며 웃었다.

너무 셔.


워낙 신 거를 못 먹는 나는,

결국 초록키위를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시고 딱딱한 과일.

그러한 과일은 과일이라는

존재감을 당당하게 드러내지만


나는 왜인지 참 그런 과일은 싫어진다.

딱딱하게 씹어지며, 신 맛이 퍼지는 그러한 과일을 먹을때면

머리가 띵. - 하며 맛이 없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어제 먹었던 물렁 키위를 떠올린다.


남들에게는 그저 하찮게 버려지는,

상품 가치가 없는 키위일지라도

나에게는 가장 최상의 농도의 키위인 것처럼.


남들이 버리는 무언가가,

나에게는 커다란 가치겠구나.

그러한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너무나 물렁해서 흐물한 거 같지만,

그럼에도 포크 안에서 당당하게 있는 키위를 보며.


남들이 상품 가치가 없다고 논하는 과일이라도

이렇게 강인하고 달콤한 모습이라면,

이러한 모습처럼 살아도 되지 않을까.

물렁한 키위를 한입 먹으며,

겉은 부드럽더라도

속은 강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남들이 버리는 무언가

지금, 이 키위처럼

나에게는 더욱 커다랗게 다가올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세일 코너를 둘러본다.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하는 코너에 올렸어야 됐는데

잘못 업로드 하여 재업로드하는 글입니다.

댓글 달아주신 거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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