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빛

나는 너무 겁쟁이였어.

by 남주

찾아온 마야의 면회시간.



지금 생각해 본 건데, 마야를 면회하기 무서웠다.



마야의 기운 없는 눈빛을 볼까 봐.

마야가 너무 아파할까 봐.

그리고 날 원망할까 봐.



그런 마음을 접어두고 마야를 보러 갔다

잔뜩 날이 선 복슬복슬한 뒤통수


마야는 잔뜩 스트레스를 머금고

철장 뒤를 보며 웅크리고 있었다.


살짝 손을 넣어 마야를 만지자

아까 들려온 그 비명을 질렀다.

너무 아프구나.. 우리 마야..


‘마야야 엄마야~ 좀만 더 버티자 ’

‘간식? 간식 먹을까?’


평소 마야를 부르던 톤 , 그리고 마야가 좋아하는 단어들로 잔뜩 꾸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마야를 안정시켜보려 했다.


잦아드는 앙칼진 목소리

하지만 여전히 짜증이 잔뜩 묻어 나왔다.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마야를 치료해야 하니까.

마야가 내 품에 다시 안겨야 하니까.


마야에게 진통제를 분명히 주었는지 한번 더 여쭤 본 후 병원을 나섰다.

마야가 안정하려면 길게 면회하는 것이 안 좋을 거라 생각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 아니라 오히려 서둘러 나왔다. 마야가 안 아프려면 어서 치료해야 하고.. 안정되야 하고.. 근데 사실 마야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그냥.. 그냥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거 같다.


집으로 돌아와 입맛이 없을 마야에게 줄 간식을 챙겼다. 나와 마야가 함께 자던 베갯잇도 챙겼다.

병원에 깔아주면 조금 더 안정될 수 있겠지.


'마야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


마야의 것을 챙기던 중

무너지 듯 울음이 터져 나왔고


엉엉 울었다.


이렇게 운 게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엉엉 울었다.

난 평생 마야에게 바라는 거 하나 없이

그저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근데 지금 마야가 너무 아파한다.


마음으로 혹시 모를 최악의 극단적 상황을 한번 더 되뇌었다.

여태 외면하지 않은 듯 외면했던 극단적 상황.


모르겠다.

끔찍해.

무서워.


벼락치기하듯이 뭐라도 해야만 했다.


하늘을 보고 기도를 했다.

신을 믿지 않지만 그 누군가에게 그냥 외쳤다.


‘마야를 다시 내 품으로 돌려주세요’

‘마야가 아프지 않고 기적처럼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니 혹시 조금 아프더라도 , 다리를 못쓰더라도 내가 다 돌볼 거예요. 마야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해 주세요 ‘


그리고는 갑자기 스쳐 지나간 생각.

혹시 미리 수의를 준비하거나 장례 준비를 미리 하면 오래 산다 라는 설을 아는가?


마야를 위한 수의는 바로 준비할 수는 없었지만 ,

(마야는 옷 안 좋아하니 그러기도 싫고..)


반려동물 다리에 나의 머리카락과 실을 엮어 묶어주면 인연이 지속된다는 붉은 실.


나는 일단 그거라도 미리 엮어봐야 했다.


참..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어떤 미신과 설에 믿고 기대게 되더라. 그리고 사실 지금도 기대고 있고..


원래는 머리카락 한올이라지만,

남편 머리카락은 거의 50가닥을 자르고 내 머리카락도 100가닥은 잘라내어 두툼한 붉은 털실에 꼭꼭

땋아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인연은 더 단단하겠지.

이렇게 미리 엮어냈으니 우리는 더 오래 할 거야.


한 땀을 땋으면서

‘다시 마야를 품에 안을 수 있길(근데 마야가 떠나면 어쩌지?)

또 한 땀을 땋으면서

‘다시 마야의 빛나는 눈을 볼 수 있길(근데 혹시 떠나면 난 숨을 쉴 수 있나?)

다시 한 땀을 땋으면서

‘마야가 다시 우다다 하면서 뛰어다니길( 매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어쩌지? )


간절한 소망들과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생각들로 잔뜩 얽혀 나는 엉엉 울면서도 끊어지지 않게 단단히 엮어 준비했다.




근데 무엇이 마야에게 최선일까?



4시간쯤 기다렸을까 ,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마야 혈당 수치가 좋고, 젖산 수치가 내려갔고 , 폐수종도 안 왔고 , 혈전이 풀려 순환이 되고 있다고..


‘ 아 내 기도가 통했다. 내 비방이 통했다.’


길고 고통스러웠던 하루 중 처음으로 빛을 본 순간이었다.


바르르 작게 진동하던 심장이

다시 박자에 맞춰 뛰는 걸 느꼈다.


마야와 함께 할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있다.

박자에 맞춰 뛰는 심장과 동시에

돌아올 마야에게 맞춘 계획을 빠르게 세워나갔다.


한편으로 안 좋은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을 자책하고

곧 퇴원할 마야를 위해 내 방을 내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모를 뒷발 괴사에 대처할 방안도 검색해 보았다.

산소방 대여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혈전을 회복한 고양이의 남은 수명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았다.


'너와 함께할 날이 아주 길지는 않겠구나 , 그래도 좀 더 나와 있을 수 있어 다행이다. '

' 난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있어. '

‘ 역시 우리 마야야, 조금만 더 힘내. 내가 갈게. ’


마야가 혈전을 이겨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희망만을 그리며 잠에 들었다.



내일은 우주를 담은 예쁜 마야의 두 눈을
보며 우리 금방 집에 갈 거야라고 말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