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출근을 했다. 아무 일 없는 척.

그냥 외면했던 거지 하지만 마주해야만 해.

by 남주

난 출근을 했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마야는 기적처럼 회복할 거고 곧 내 품에 안길 거니까.


휴가를 쓸 수 있었지만

출근을 했다.


밤새 응급전화가 안 왔다는 이유로 안심을 했다.

남편은 오후에 마야에게 면회 가보겠다고 했다.

안심했다.


연말의 회사엔 출근한 인원도 별로 없었고, 딱히 할 일도 많지 않았다.

그냥 시간을 보냈다.

곧 마야를 보러 갈 거니까. 그냥 시간을 보냈다.


점심도 먹었다. 맛있었다. 하늘이 맑고 날이 좋았다.


' 오늘 마야가 이른 퇴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퇴원하기에 좋은 날 이잖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었다.

출근을 했고 날이 좋았고 점심을 먹었고 커피와 간식도 먹었다.


.

.

아무렇지 않게 전화가 왔다.

.

.



'자기야... 마야 상황이 안 좋은 듯 해. 일단 내가 가보려고. 선생님 말씀으로는 어제 칼륨수치가 올라서심박이 낮아졌었고, 지금도 칼륨 수치가 올랐대. 일단 약을 써서 낮춰 놨다는데.. 일단 가볼게.'


나는 혹시 내가 가야 할 상황이면 바로 말해달라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머리끝부터 가벼운 재처럼 바스스 흩어지는 듯

무거운 돌처럼 과르르 무너져 내리는 듯

다시 차게 식는 몸을 느끼고 통화를 끊었다.




하아 .. 나는 왜 항상 설레발일까?




자책했다.

또 자책했다.

손이 떨려온다.


한번 더 전화가 울렸다.

떨림을 숨기지도 않는 남편의 목소리


'자기야. 와야 할 거 같아'

'바로 갈게. 지금 어떤데. ‘

‘마야 칼륨수치가.. 사실 혈전이 풀린 게 아니라..

소변이 안 만들어져서..‘

‘길게 말하지 말고 그냥 결론만 말해줘’

'마야 안 좋아 보여. 그리고 치료 가망이 없고.. 지금..'

'안락사. 생각해야 한대?'

'응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고....'

'바로 갈게'


몸은 아까부터 차게 식어 있었고

나는 결정을 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코 앞임을 느끼며 택시를 탔다.


내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손 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손도 떨리지 않았다.


차가 막힌다.

마야 가는 날 하늘이 맑아서 다행이네.

근데 마야 닮은 포근한 눈이 내려도 참 좋겠다.


'언젠가 다가올 상황이었어'


끊임없이 되뇌었다.


한 번도 끓어본 적 없는 스텐 주전자처럼

내 안은 텅 비워져 있었고 겉은 차갑고 또 고요했다.


'안락사는 정말 안락한가요?'


검색창에 안락사는 정말 아프지 않은지 검색했다.

먼저 수면으로 재운 뒤 시행하는 거라 편안히 잠들 수 있다 쓰여 있었다.


마음을 먹었다.


이제 난 마야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말을 생각해야했다.

아.. 이전에 분명히 마지막 순간에 해줄 말을 생각해 두었었는데 ..

나에게도 너에게도 멋질 말을 생각해 두었는데 ..

기억이 안나네..


머리가 어지럽다.


'마야 사랑해 고마워'

'마야 간식 먹자'

'마야 코 자자'

'아, 마야가 좋아하는 바스락 테이프 소리도 들려줘야지'

'아, 마야는 이클립스(사탕) 냄새 좋아하니까 이거 먹고 가야겠다'

'우리 마야 아이 이쁘다'


그래. 마야는 편안해지는 거야. 괜찮아. 나도 괜찮아.괜찮아. 마야는 안 아파지는 거야.

혈전이 오면 너무 아프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눈물이 흘렀다.

보통의 슬플 때와 같은 목구멍이 뜨겁게 막히는 느낌도 없었다.

그냥 눈 사이의 틈으로 놓지 못했던 희망이 흘러 떨어졌다.


.

.

.


마야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사실 차가 더 막혔으면도 했다.


바로 응급실로 들어가려 했으나, 데스크 직원이 잠시만요~ 하며 나를 막아섰다.


저기 안에 우리 마야가 있어요!

하고 소리치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찌 됐든 그냥 이 순간을 미루고 싶어 참았다.


데스크 직원이 잠시만 기다리라며 1-2분간 어영부영 서성이길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왔어'


남편이 응급실에서 나왔다.

눈물범벅.




'응.. 자기야..‘






‘마야가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