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이 무너지는 순간, 진짜 상대가 보인다
바둑은 언제나 대칭에서 시작한다.
정사각의 바둑판, 마주앉은 두 사람.
그리고 흑과 백의 돌만이 차이를 드러낸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스승과 제자의 대결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스승은 제자에게 질 수 없다. 그렇다고 진심으로 이기려 들수도 없다.
제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이겨야 하지만, 이기는 순간 스승과 제자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 글은 영화 "승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둘의 대결을 스승 조훈현(이병헌) 위에 드리운다.
대진표를 그의 모습 앞에 정확히 대칭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스승 조훈현은 '승부'에 집중할수 없었다.
제자에게 지면 스승으로써 자격을 잃고, 제자를 이기면 제자의 길을 막게된다.
승부는 여전히 대칭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조훈현은 계속해서 엇나간다.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 인사를 먼저하고, 자리를 먼저 뜬다.
계속해서 대칭을 파괴한다.
그렇게 그는 패배한다.
영화는 스승 조훈현의 패배를 단순한 세대교체로 표현하지 않았다.
대칭을 이뤄야할 공정한 스포츠 바둑의 대칭이 깨지는것으로 표현한것이다.
스승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유아인)에게 첫 패배를 기록한후,
조훈현은 대결을 복기하며 제자에게 조언해주는 시간을 여전히 갖는다.
이때 이창호는 흑돌과 흑돌 사이에 자꾸만 백돌을 밀어넣는다.
조훈현은 그게 싫다.
설명하지 못한다. 모양이 안좋다고만 말한다.
이창호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이 장면은 바둑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끼인 승부의 불편함을 표현한다.
조훈현은 자신의 제자와 공정한 대결을 해야한다는것을 인정하지 못하는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승부를 자꾸 밀어넣는다.
조훈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둘은 이별을 결심한다.
조훈현은 과거 이창호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던 바둑의 수를 매몰차게 거절한적 있다.
이창호가 고집을 피우자 화가 나 꾸겨버렸던, 그 수가 적힌 종이를 마지막 선물로 준다.
그는 스승이었지만, 동시에 경쟁자였다.
이창호 역시 제자였지만 동시에 도전자였다.
스승과 제자 관계가 깨지는 순간이다.
방황하던 조훈현을 다시 승부의 자리에 돌려놓은것은 승부에 대한 기본 자세다.
그를 바둑판 앞에 다시 앉게 만든건,
이창호를 이기겠다는 결심도 아니고, 다시 왕좌를 차지하겠다는 욕심도 아니다.
그의 오래된 바둑판에 적혀있는 초심이다.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바둑을 해야할 이유를 다시 되찾은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기고 싶어한다.
그가 담배를 끊고 카라멜을 입에 무는 모습은 이를 상징한다.
이둘의 승부는 다시금 이어지고 엎치락 뒤치락 경쟁한다.
다시 영화는 이둘의 대결을 정확히 대칭으로 잡아낸다.
바둑판 정중앙을 갈라놓고, 공정한 승부가 연출되는것을 허락한다.
누구도 그 대칭을 깨트리지 않는다.
이렇듯 영화는 제자와 스승에 끼인 그 불편한 싸움을,
자기 자신과의 승부로 전환시킨다.
진정한 '승부'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