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설 특집> 철학자의 요리

며칠 전 페이스북에 페친 한 분이 다른 분의 글을 올리셨다.


“요리가 엔터테인먼트가 된 시대, K스트리밍과 K-푸드가 열어갈 미래”라는 제목의 짧지 않은 글이지만 요즘의 방송 트렌드를 보여주는 글이라 흥미롭게 봤다. 요리를 가르쳐주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엔터테인먼트로 진화한 요리 프로그램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와 산업의 관점에서 본 요리 프로그램에 대한 해석과 전망이 눈길을 끌었다.


링크 소개 :

https://www.kentertechhub.com/pudeu-peurogeuraem/?fbclid=IwY2xjawQB-FNleHRuA2FlbQIxMABicmlkETJvek4yTXBWOUZsYnR0Vkc5c3J0Y wZhcHBfaWQQMjIyMDM5MTc4ODIwMDg5MgABHlq3Gx1tkzX2HkBQTV4uGWHettlQ f72pO8HpI7N_nZwSjnNwPGWq2NRG1eOz_aem_xsgMMVTOdEEOus4kauda9A


이 글을 접하고 나서 요리 다큐멘터리에 대한 글을 써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V를 틀면 고전적인 형태로 ‘6시 내고향’에서 ‘내 고향’ 특산물을 소개하면서 음식을 소개하는 전통적인 음식 방송과 ‘특종 비디오 저널’을 원조로 하는 저녁 데일리 생방송에서 대한민국의 갖가지 식당을 소개하는 음식 방송을 제외하더라도 정말 많은 음식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연예인이 먹거나, 운동선수 출신들이 먹거나, 여행을 가서 먹거나, 요리를 만들러 굳이 해외에 나가서 먹거나 하는 콘텐츠들이 지상파, 종편채널, 유튜브에 노아의 홍수를 방불케 할 정도로 범람한다. 또한 시간과 예산이 많이 투자되는 프로그램도 많이 제작되는데 ‘흑백요리사’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 쇼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도 적지 않게 방송된다.


2026년에 방송된 다큐멘터리를 살펴보면 KBS는 2026년 1월 22일 ‘다큐인사이트 - 슈퍼다이닝: 뉴욕의 한식 세프들’을 방송했으며 SBS는 2월 12일과 19일에 ‘더 코리안 셰프’ 2부작을 방송했다. 설 명절에는 역시 음식 다큐가 빠질 수 없는데 KBS는 ‘철학자의 요리’라는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철학자의 요리 이미지.jpg 철학자의 요리 포스터 / 출처 : 제작사(ELTV) 홈페이지

KBS 설특집 <철학자의 요리>

1부 시절인연(時節因緣) : 2026년 2월 16일(월) 19:10 KBS 2TV

2부 보리일미(菩提一味) : 2026년 2월 17일(화) 18:40 KBS 2TV


다큐멘터리가 KBS 2 TV로 편성된 것이 독특하다. 음식 다큐멘터리이니 저녁때 편성이 적절하게 보이긴 한다. 설 연휴를 길게 보면 금요일(13일) 저녁에서부터 수요일(18일)까지 6일에 가깝다. 이 기간 동안 설 특집 편성을 해야 하는데 2 TV의 경우 예능 프로그램으로 모두를 채울 만큼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도 2 TV로 편성된 것으로 보인다.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중계권 협상이 원만히 해결되었다면 동계올림픽 중계가 많이 편성되었겠지만 이번에는 지상파가 JTBC로부터 중계권을 사지 않기로 했는데 그런 이유도 있어 보인다.


‘철학자의 요리’는 사찰음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정관 스님과 스님의 음식철학과 스님이 만드는 사찰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관 스님은 넷플릭스의 ‘셰프의 테이블 시즌 3’에 출연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스님 셰프로 전남 장성군에 있는 백양사의 천진암이라는 곳에서 수양을 하고 계시다.


‘철학자의 요리’에서는 백양사의 4계와 함께 다양한 사찰음식이 소개된다. 정관 스님이 프리젠터이면서 동시에 내레이터의 역할을 맡은 것도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내레이션을 하신 경험이 얼마나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프리젠터의 직접 내레이션은 친밀성과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진실성을 전달하는 데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으며 좋은 선택이라고 보였다. 다만 전달력 부분에 있어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직접 내레이션을 하는 프리젠터의 친밀성과 진실성이 부족한 전달력을 충분히 보충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1부는 겨울에서 여름까지 3개의 계절을 다루고 2부는 가을에서 다시 겨울로 가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간다. 계절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의 재료가 바뀌고 스님의 손을 거친 다양한 사찰 음식들이 선을 보인다. 산사의 아름다움에 완성된 음식의 아름다움이 더해 눈이 심심하지 않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단조로운 구성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촬영이 주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하더라도 영상과 이야기는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계절의 변화는 음식 재료의 변화를 가져오고, 또한 음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음식의 변화는 또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표고버섯 조청조림이라는 음식이다. 1부에서 스님이 출가 후 속세로 돌아가자며 아버지가 찾아왔을 때 표고버섯 조청조림을 해드렸다는 이야기가 소개되었는데 이 부분은 자칫 사찰음식 만드는 이야기에만 빠질 수 있는 구성을 넘어 스님의 삶과 사찰음식에 대한 인연을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수행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만드는 사찰음식은 ‘수행의 도구’라는 스님의 요리 철학을 다큐멘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2부의 서브타이틀인 보리일미(菩提一味)라는 말에서도 그런 의미들이 잘 살아난다. 스님은 보리일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보리는 깨달음이오, 일미는 한 맛이오. 깨닫는 것에는 두 맛이 필요가 없어, 한 맛이야”


일미(一味)는 아주 뛰어나고 독특한 맛이라는 뜻도 있지만 불교 용어로는 부처에 관한 설(說)은 여러 가지이나 그 본지(本旨)는 동일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 중의적인 표현이다. 정관 스님은 음식 재료의 본질을 깨달으며, 자연에 순응하고, 수행을 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음식만을 먹고 수행에 정진하는 불교의 철학에 대해 음식을 만들면서 쉽게 설명한다.


스님의 음식은 수행자가 수행의 도구로서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에 시장과 고객을 상대로 하는 저잣거리의 셰프들과는 다른 음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속세의 셰프들은 상업적 측면을 고려해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과는 다른 철학을 보여주는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음식인 것이다. 세속의 셰프들도 ‘무엇을 위해’, ‘왜’ 음식을 만드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보겠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국내외의 유명한 셰프들이 정관 스님의 음식과 철학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철학자의 요리>에는 국내외의 유명한 셰프들이 인터뷰를 통해 정관 스님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정관 스님의 요리 철학을 이야기한다.


‘철학자의 요리’는 ELTV라는 제작사에서 제작을 했다. 제작사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음식 전문 프로덕션이다. KBS의 다큐인사이트에 많이 소개되었던 랩소디 시리즈, 4부작 맛의 나라의 제작사이다. 많은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어 보인다. 아마도 이 다큐멘터리도 KBS에서의 방송과 함께 넷플릭스에서도 스트리밍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상파에서 하는 방송을 못 보신 분들은 OTT에서 볼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KBS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사실 대한민국 음식 다큐멘터리는 KBS가 선도해 왔다. KBS는 ‘누들로드(2008년~2009년 방송)’를 비롯해서 시리즈로 제작되었던 ‘요리인류’ 등 만듦새와 화제성이 높았던 음식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다. 특히 ‘누들로드’는 아시아 다큐멘터리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 중반 해외 마켓에 나갔을 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누들로드’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들로드’의 성공 이후 2012년 중국 CCTV에서는 ‘혀 끝으로 만나는 중국(舌尖上的中国)’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송했다. 해외 마켓에서 ‘혀 끝으로 만나는 중국’ 제작에 ‘누들로드’의 영향이 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요리인류 KBS 홈페이지.jpg KBS 요리인류 / KBS 홈페이지 캡쳐 화면

하지만 이제 KBS가 제작하는 음식 다큐멘터리의 맥은 연출자의 퇴사와 함께 끊어졌다. 연출자인 이욱정 PD만큼 음식 다큐멘터리에 천착하는 PD가 없기도 했지만 ‘돈 먹는 하마’ 같은 제작비도 문제였다. 사실 이욱정 PD가 제작했던 다큐멘터리는 긴 제작기간, 해외 촬영 등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콘텐츠다. 방송사에게 다큐멘터리는 돈을 벌어주는 콘텐츠가 아니라 돈을 쓰는 콘텐츠다. 지상파의 주머니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지는 때였기 때문에 한 사람의 PD가 많은 제작비를 지속적으로 쓰기에는 눈치가 많이 보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어찌 됐듯 그 후 KBS에서는 자체 제작하는 음식 다큐멘터리의 맥은 끊겼고 외부의 제작사의 다큐멘터리를 구매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미 다큐멘터리 시장의 흐름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처럼 외부 제작이 대세이고 방송사 내부 제작은 위축되어 있다. 음식 다큐멘터리의 제작도 그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PD의 브랜드’에 대한 것이다. 드라마나 예능은 PD가 브랜드화되어 있다. ‘표민수 드라마’, ‘김원석 드라마’, ‘김태호 예능’, ‘나영석 예능’처럼 PD의 이름이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브랜드화된 PD가 없다. ‘이욱정 다큐멘터리’라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KBS는 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KBS는 이호경이라는 걸출한 PD가 있지만 ‘이호경 다큐멘터리’라는 브랜드를 만들지 않았다. KBS가 안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생각은 있는 것인지,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다큐멘터리 PD의 브랜드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호경 PD의 다큐멘터리는 추후 기회가 되면 소개할 생각이다.


다시 ‘철학자의 요리’로 돌아오자.


비록 음식의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철학자의 요리’는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먹거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수행의 도구로서의 음식이라는 불가의 철학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발우공양의 현지인들과 함께 한 장면들은 수행의 도구로서의 음식에 대한 불교의 철학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의 요리’는 영양 과잉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음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다큐멘터리였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KBS의 홈페이지에서는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집 프로그램은 홈페이지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정규 프로그램도 아니고 설명절에 재방송까지 하고 끝나는 ‘일회성’ 프로그램이니 제대로 된 홈페이지가 구축되기 어렵다. 사정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외부제작사의 프로그램을 구매하여 방송한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하는 방송이므로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러한 특집들을 모아 하나의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여전히 온에어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KBS 홈페이지의 KBS 보도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Mylove KBS에서도 ‘철학자의 요리’에 대한 보도자료가 없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보도자료를 만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년이 넘도록 촬영한 특집 다큐멘터리인데 보도자료 한 줄 없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획을 담당하는 프로듀서 역시 책임감을 갖고 자신들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자료를 만들어 공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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