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제에미상 다큐멘터리 수상작

Hell Jumper

아침에 출근하니 국제 텔레비전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International Academy of Television Arts and Sciences, IATAS)에서 메일이 왔다. IATAS라는 이름이 낯설 수 있지만 이 기관은 국제 에미상(International Emmy Awards)을 주관하고 시상하는 기관이다. 2025년 11월 24일 뉴욕에서 53회 국제 에미상 시상식을 다룬 e-magazine을 메일로 보내온 것이다. 국제 에미상은 널리 알려진 대로 세계적 권위를 가진 상이다. 시상하는 분야는 여러 분야가 있지만 나와 관련이 있는 분야는 크게는 두 분야이다. 하나는 예술 분야(Arts Programming)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큐멘터리 분야(Documentary)이다.

내가 국제 에미상에 관련이 된 해는 2017년이었다. 국제 텔레비전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가 심사위원을 어떠한 기준으로 선정하는지도 모르지만 영광스럽게도 최종 심사위원으로 위촉받았다. 짐작컨대 그동안 해외 마켓에서 다큐멘터리 구매하는 큰 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의 정보가 이들의 손에 넘어갔고, 한국의 심사위원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부터 국제 에미상의 최종 심사 위원(Final Juror)으로 마지막에 올라온 최종 작품 4편을 심사해 오고 있다. 어떤 때는 예술 분야를, 어떤 때는 다큐멘터리 분야의 최종 심사를 하고 있다. 2024년과 2025년은 다큐멘터리 분야의 최종 심사위원이었다. 매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의 후보로 오른 4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자체가 상당히 흥미롭고 가슴뛰는 일이다. 그것도 내가 심사해서 순위를 평가하다니 말이다. 그래서 심사 요청 연락이 오면 단 한 번의 주저함없이 심사위원 위촉을 승낙하고 ‘심사의 고통’을 즐긴다.



사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 어떤 다큐멘터리로 시작을 할까 고민했었는데 계기가 된 것은 2025년 국제에미상 다큐멘터리 부분 심사였다. 심사하면서 느낀 글을 조금 썼다 중단했는데 그 뒤 <역사스페셜>이 ‘시간여행자’라는 꼬리를 달고 다시 방송하고 나서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다.

Official 2025 International Emmy Juror Digital Badge.png 2025년 국제에미상 심사위원 뱃지 / #iemmys


원래 쓰려고 했던 글을 오늘에서야 쓰고 있는 것이다.

2025년 국제 에미상 다큐멘터리 분야의 최종 4개 작품(final 4)은 영국 Expectation TV의 Hell Jumper, 프랑스 Abelart Production의 King of Kings: Chasing Edward Jones, 브라질 Amana Cine/Globo/RioFilme의 O Prazer É Meu(It‘s My Pleasure), 남아공 IdeaCandy의 School Ties라는 작품들이다.


네 작품을 간단히 소개해 본다.

국제 에미상 후보작들.jpg 2025년 국제에미상 다큐멘터리 분야 최종후보작 / 국제에미상 E-Magazine


‘Hell Jumper’라는 작품은 전쟁 지역에서 피란을 가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피란을 시켜주는 자원 봉사자인 Hell Jumper로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활동한 영국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King of Kings: Chasing Edward Jones’라는 작품은 1930년대 미국 시카고 흑인사회의 대부인 에드워드 존스의 손녀가 자신의 할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당시의 시대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로 에드워드 존스의 후손 중 한 명인 음악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가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에드워드 존스는 당시 흑인들을 상대로 하는 로또 사업인 폴리시(Policy)로 부자가 된 인물이다. 동네가 시카고이다 보니 마피아와 관련된 스토리도 같이 나온다.


O Prazer É Meu(It‘s My Pleasure)는 좀 민망한 이야기이긴 하다. 제목이 느낄 수 있듯이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성들의 성적인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지막인 School Ties는 남아공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구(Water Polo) 코치가 사립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하며 성적 폭력을 휘둘렀던 이야기를 다룬 탐사 다큐멘터리이다.


이 중 수상작은 Hell Jumper라는 다큐멘터리다. 나는 이 작품을 심사하면서 한동안 아무런 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신이 멍했다.


국제에미상 다큐멘터리 부분 수상작 .jpg 국제에미상 E-Magazine 중 다큐멘터리 부분 수상기사


Hell Jumper는 크리스 패리(Chris Parry)라는 영국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Hell Jumper라는 말 자체가 지옥에 뛰어든 사람이라는 말인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옥같은 전쟁 지역에 뛰어들어 피란을 가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피란을 시켜주는 민간인 자원봉사자를 의미한다

.

크리스 패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떠났다. 다른 종류의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크리스가 선택한 자원봉사는 Hell Jumper였다. 먼저 피란을 떠나 온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지 못한 노약자 가족들에 대한 구조를 요청하면 Hell Jumper들이 지역을 찾아가 피란을 시켜주는 것이다. 전투가 한참 진행중인 지역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Hell Jumper들은 몸에 카메라(Body Cam)를 부착하고 자신들의 구조 활동을 기록한다. 크리스의 활동 역시 그렇게 영상으로 남았다.


다큐멘터리는 크리스의 바디캠 영상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크리스는 구조를 요청한 사람을 찾아 페허가 된 마을을 핸드폰의 지도 앱을 보며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주소가 잘못됐거나 그 건물이 무너져 다른 건물에 피신해 있는 경우도 있다. 1시간 반이나 되는 다큐멘터리속에는 총성이 끊이지 않고 들리는 전쟁의 한 복판에 크리스의 거친 숨소리가 영상속에 가득하다. 1인칭 시점의 영상이 주는 강력한 힘이 다큐멘터리를 지배한다.

다큐멘터리 안에는 사랑도 있다. 정말 영화속 이야기처럼 크리스는 우크라이나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우크라이나 여성을 집으로 초대해 부모에게 소개시키도 하고 둘이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한다.


크리스는 구조 활동을 떠났다가 해가 지고 어두워지고 나서 러시아의 바그너 용병이 쏜 총을 맞고 죽었다. 구조 활동을 해가 지기 전에 마치고 귀환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한 것을 알고도 구조 활동을 한 것이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영국 정부로부터 전해 들었고 PC를 전달받았다. 부모는 그 PC 안에는 있는 바디캠 영상으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BBC Hell Jumper 홈페이지.jpg Hell Jumper / BBC 홈페이지 캡쳐


이 다큐멘터리는 2024년 BBC를 통해서 방송되었으며 영국 사회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Guardian)은 심장을 멎게 하는 이야기(Hell Jumper review – the heartstopping tale of the volunteer who saved hundreds of Ukrainians)라며 별 5개의 평점을 주기도 했다. 가디언 뿐 아니라 권위지와 대중지를 포함한 다른 언론들로부터도 좋은 다큐멘터리라는 평점을 받았다.


가디언 링크 :


https://www.theguardian.com/tv-and-radio/article/2024/jul/24/hell-jumper-review-the-heartstopping-tale-of-the-volunteer-who-saved-hundreds-of-ukrainians


BBC Hell Jumper 이미지.jpg 영국 언론들의 평가 / 이미지 출처 : X.com


Hell Jumper를 검색하면 짧은 영상이 검색된다. 아주 짧은 트레일러 영상으로 아쉬운 대로 이 작품이 어떤 내용인가는 느낄 수 있다.


트레일러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KIVc6WfYhTQ



이 다큐멘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다루는 무거운 주제이었지만 내가 그동안 만났던 어느 작품보다 강렬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싸우는 치열한 전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하겠다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위험한 전쟁터에 뛰어든 한 젊은이, 그것도 전쟁과는 무관한 나라의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전쟁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전쟁과는 먼 지역인 영국에 사는 크리스는 왜 전쟁이 시작된 우크라이나에 갔으며 무슨 생각으로 목숨을 건 활동인 Hell Jumper를 자원했을까? 28세 밖에 안되는 이 젊은 청년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대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벌이는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이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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