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 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

얼마 전 후배와 함께 점심을 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말에 <모던코리아>를 봤다고 이야기 하니 <모던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보지 못했다고 하니 잘 만드는 후배 PD가 만든 것이니 한 번 보라며 내게 극장판 <모던 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를 보내주었다.


일단 극장판 전에 방송된 것을 보기 위해 KBS 홈페이지에 <모던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부터 먼저 봤다. 1983년을 ‘미지와의 조우’라는 컨셉으로 정리한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였다. ‘미지’는 여러 단어 未知로 보이며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1983년은 동서 냉전이 마지막 클라이막스로 치닫던 해였다. 분단국가인 우리로서는 공산권 국가와의 접촉이 불가능했던 시기였다. 북한을 포함한 공산권 국가인 ‘미지’와 조우(遭遇), 즉 우연하게도 만남이 많았던 한 해가 1983년이었다. <모던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는 1983년의 이런 상황을 잘 정리해 의미있는 해석을 한 다큐멘터리였다.


프로그램 타이틀 :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
방송일 : 2024년 9월 20일

연출 : 이은규


방송 버전 링크 :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19-0183&program_id=PS-2024051525-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section_code=05


2024년 <모던코리아>는 9월에 4편이 방송되었는데 <모던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는 그중 세 번째 에피소드로 9월 20일에 방송되었다. 2024년 방송된 <모던코리아> 4편의 다큐멘터리는 극장용으로 재편집되어 2024년 제16회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https://dmzdocs.com/kor/addon/00000002/history_film_view.asp?m_idx=103099&QueryYear=2024&c_idx=262&QueryType=BBS


방송 버전의 러닝 타임은 48분 21초이고 극장 버전의 러닝타임은 76분이다. 러닝타임이 28분 정도 차이가 나니 극장판의 스토리가 더 풍부하다. 그렇다고 해서 방송 버전 다큐멘터리의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방송 버전은 방송 버전 특유의 압축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외계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E.T>가 그것이다. 영화 <E.T>는 1982년 미국에서 개봉해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지만 한국에서는 개봉이 늦어져 1984년에 개봉됐다. 하지만 1983년이면 공식 개봉 1년전이지만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고 1983년 어린이날 행사에 등장할 정도였고 <미지와의 조우>에도 많이 사용됐다. 이날 어린이 날 행사는 지금은 DDP가 들어선 서울운동장에서 있었다.


PG-1983-0308-010.jpg 자료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 https://www.ehistory.go.kr/view/photo?mediasrcgbn=PT&mediaid=4869&mediadtl=37579


외계인과의 만남이야말로 미지와의 조우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점을 핵심 컨셉으로 잘 파악했다.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은 아니지만 1983년은 비행기와 관련된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고 모두 공산권과 관련이 있다. 첫 번째는 2월 25일 북한의 공군 대위 이웅평이 미그 19기를 몰고 북에서 탈출하여 남한에 귀순한 것이고 두 번째는 어린이 날인 5월 5일에 중국 민항기가 납치되어 춘천의 미군기지인 캠프 페이지에 착륙한 것이다. 마지막은 비극적인 사고로 9월 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미국에서 돌아오다 소련 공군기에 의해 피격당한 사건이다.


<모던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는 이 사건들의 자료 영상을 모아 ‘미지와의 조우’라는 주제아래 잘 버무린 다큐멘터리다. ‘반공’이 시대의 정신이던 1983년 공산권으로부터 날아온 두 대의 비행기로 들뜬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정교한 편집으로 잘 드러냈다.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최상의 소재가 외부로부터 한국사회에 도착한 것이다. 반면 대한항공 여객기의 피격은 공산권의 대부인 소련에 대한 적개심과 함께 국민들의 뇌리에 ‘반공’에 대한 결의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다.

미그기 귀순자 이웅평 대위의 입장, 비행기 납치범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한국에 와 버린 중공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우리의 입장에도 둘은 서로가 외계인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자료 영상을 통해 한 편의 스토리로 만들어낸 창의성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영상 자료를 통해 1983년의 의미를 잡아낸 감각을 칭찬한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공 민항기 납치범들이 중화민국에서 받은 환대와 그 후 납치를 주도했던 인물이 살인범이 되어 사형에 처해졌다는 이야기는 고향을 떠나 온 이방인(여기서는 외계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의 마음을 읽게 해준다. 이웅평 대위보다 먼저 귀순한 안찬일 씨가 이웅평 대위의 말년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이방인은 이방인일 수 밖에 없었다’라는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엔딩은 이웅평 대위가 간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며, 비행기를 타고(조종하고) 싶어했지만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는 내용과 중공민항기 납치범이 대만에서 사형에 처해졌다는 이야기, 아웅산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이 결국은 미국으로 떠났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화면 가운데에 ‘결국 조우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들’이란 자막으로 마무리한다. 정말로 미지의 세계와는 만나지 못한 것이었을까? 미지의 세계와 조우했지만 슬픈 엔딩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우선은 아웅산 테러와 관련된 것인데 ‘북한군의 테러로 대한민국 정부 관계자 17명이 사망했다’라는 자막이다. 대한민국의 장, 차관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는데 ‘정부관계자’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게 느껴졌다. 장관과 차관들은 ‘관계자’ 아니고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기욱 재무부 차관의 딸인 산드라 리(이영정)의 인터뷰이다. 영상을 보면 어린 이영정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은 랑군 암살폭발 상기 북괴 만행 규탄 궐기 대회는 1983년에 있지 않았다. 지난 기억을 되살리자라는 뜻의 상기(想起)라는 단어가 대회 이름에 붙어 있고, 현장의 진행자가 “작년 10월 9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산드라 리의 이야기를 살리기 위해서 1984년의 영상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인가 가슴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필요했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싶지만 온전히 1983년의 영상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는 어렵다.

이 점을 중시여기는 이유는 이 다큐멘터리가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입사 1년차때의 일이다. 회사에서 역사 다큐멘터리에 대가로 불리는 책임 프로듀서 선배가 있었다. 옛 TBC 출신이니 엄청난 고참 선배였다. 신입 AD 시절이니 말 붙이기도 어려운 존재였다. 그 선배가 했던 말이 이런 거다.

“자료를 섞어서 편집하지 말아라”


예를 들자면 1979년 서울의 A라는 대학에서 벌어진 시위를 편집할 때 ‘같은 날 B라는 대학에서 벌어진 시위 장면’을 섞어 편집하거나, ‘다른 날 같은 학교에서 벌어진 시위’를 섞어 편집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고 수동적인 수용자(방송은 시청자이고 영화는 관객)은 그 둘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내용을 모르는 다른 PD는 섞어져 있는 영상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계속해서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이틀에 1983이라고 명확하게 연도를 밝혔다면 1983년도의 영상으로 편집해 제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다른 해의 영상을 사용한다면 그 영상의 제작년도를 자막으로 넣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모던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는 그러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한 해 전인 1982년 영상도 사용되었고 1984년 영상도 사용되었다. 먼저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불친절’한 다큐멘터리 <모던코리아>에서 그런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모던코리아 1983 미지와의 조우>의 방송 시점이 40년이 지난 2024년이라 세대별로 다양한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시청자들의 연령대에 따라 ‘해석’과 ‘경험의 복기’으로 나뉠 것 같다. 제작자들의 연배를 보면 그 당시에 국민학생이었거나 유치원생, 심지어 출생 전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이 영상 자료로 보고 해석한 1983년과 지금은 50대 중반의 나이를 넘어섰을 그 당시 중고등학생이 경험하고 느꼈던 1983년, 당시 성인들이 느꼈던 1983년은 많이 다를 것이다. 현재의 10~20대인 시청자들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느낄 1983년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고.

나 역시 반공 이데올로기에 강력한 영향을 받은 세대로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여러 사건들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1983년을 되돌아본 적은 없던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 덕에 젊은 세대들이 해석하는 1983년을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됐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추천해 준 후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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