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그릇에 당신의 물도 담기를
마닐라 국립박물관은 꼭 가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과 유물을 보며 박물관에 담긴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박물관 속 다른 문화를 느끼며 아이들이 안목을 키우길 바라는 욕심도 있었다.
비단재질의 화려하고 부드러운 촉감의 우리나라 옷과 달리 필리핀의 의상은 투박하고 거칠게 느껴졌다. 속으로 한국보다 문화수준이 낮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한참 전시관을 가다 보니, 그들의 거친 옷감은 습하고 더운 날씨에 적응하기 위해 만든 우리나라의 삼베와 비슷한 질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좁은 식견으로 자연에 적응하기 위한 그들의 문화를 폄하한 것이다.
박물관은 현재의 우리가 먼저 살아온 시간을 반추하며 정체성과 가치관을 확인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내가 가진 틀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느꼈다. 경제성장만으로 우리 나라가 더 우월하다는 착각에, 그들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문화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한 것이 편협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한때 필리핀은 한국에 아라네타 콜리시움과 똑같은 장충체육관을 만들어 기증할 정도로 경제가 발전한 나라였다. 지금은 반대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필리핀 사람들의 큰 꿈일 정도로 한국은 큰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필리핀 사람들을 알게 되며 삶이 우리 나라보다 덜 여유로운 그들의 마음 역시 그늘이 있거나 가난한 마음이 깃들어 있을 거라 마음 한 쪽으로 생각한 나의 오만함을 반성했다.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지지 않더라도 지금 가진 좋을 것을 나누며, 함께 축복하는 삶으로 아름다운 오늘을 사는 것을 필리핀 사람들에게 배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호의적인 마음으로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되지!!
여행 후 선물을 건넸을 때 시큰둥한 상대의 반응에 서운함이 생겨 기념품을 사지 않았다. 그 옹졸한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민도르 섬으로 단체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 함께 하지 않은 Linds 선생님이 투어를 다녀온 선생님들에게 받았다고 기념품을 보여주었다. 순간 선생님들의 미소도, 기념품도 반짝 빛니 나 보였다. 좋은 순간을 누리며 친구에게도 나눠주는 주는 이가 건넨 따스한 마음에,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친구에게 받은 기념품으로 좋은 곳을 하나 더 알았다는 감사함으로 건네 받은 선생님을 보며 지금까지 꽁한 나의 마음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좋은 마음을 받아주는 사람과 함께 나의 여행지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선생님들을 통해 알았다. 그래서 평소라면 먼 거리에서 구경만 했을 기념품 가게에서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줄 이름이 각인된 냉장고 자석과 볼펜을 구매했다.
타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나의 삶도 키워간다. 아이들도 자연스레 그 태도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며 성장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