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복잡할 땐 탁 트인 곳 걷기
아이들과 좁은 방에서 셋이 지내려니 마음이 더 복잡해지고, 생각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이렇게 오롯이 스물 네 시간을 아이들과 보낸다는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이제 스스로 씻을 줄 알고, 옷을 챙겨입을 수 있으니 한결 편해졌음에도 아이들에게 더 나은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에 욕심이 앞서 또 다른 짐을 스스로 얹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십년 만의 경험인 대학교 캠퍼스는 신선하고 평화로웠다. 하교 후 아이들의 다음 일정을 쫓기면서 다니느라 숨이 턱에 찬 서울의 하루를 보내던 시간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은 겨울이지만, 쨍쨍한 햇볕이 쏟아지는 마닐라의 1월은 일찍 눈을 뜨게 했다. 과외 수업을 마닐라에서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초반 일주일은 시간 약속을 잡을 연락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릿 속이 깜깜하기만 했다.
아이들에게 엄마 내일 아침에는 운동장을 돌고 오겠다고 잠들기 전 말을 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마닐라에 도착한 지 정확히 일주일 후 그런 나를 첫째딸이 일으켜 세웠다.
"엄마 운동하고 와."
자식의 말이 세상 누구의 말보다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일어나서 30분 정도 운동장을 걷다가 뛰었다. 뛰었다가 심박수가 올라가면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보자 엔돌핀이 샘솟았다. 엄마인 내가 지속적으로 운동장을 도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언젠가는 나를 따라 함께 돌 날도 상상했다. 다른 마음 한편으로는 이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me time인데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욕심도 들었다.
운동장을 돌면서 생각했다. 오늘 숙제 있었는데 운동할 시간에 숙제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어쨌든 나에게는 적지 않은 돈을 신랑에게 받아 시작했으니 많은 걸 얻어가고 싶은 욕심이 앞서는 초반의 시기였다. 아이가 아파서 수업시간을 빠지는 시간이 생기자, 그 공백을 메울 보충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아깝기만 했다.
1월 11일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빠지는 수업에 연연하지 말고, 오늘 컨디션과 마음을 잘 관리해서 아이들이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줘. 즐거운 기분이 아이에게 더 잘하고 싶은 동기를 만들어주니깐.
복잡한 생각으로 짐을 자꾸 어깨위에 얹지 말고, 아픈 아이를 충분히 쉬게 해. 스트레스를 이완할 수 있는 예쁜 카페 등 쾌적하고 편안하게 기분을 전환할 곳을 찾아서 다녀와! 우리에겐 또 내일이 있으니깐."
#가족연수 #필리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