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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원 앞에서의 굴욕

소극적 저항은 입금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기

by 핑크골드 Mar 24. 2025

시어머니는 아이들에게 5만원씩 주셨다. 그리고 다음에 가면 저금했는지, 아이들 통장에 넣었는지 얼마인지 물어보았다.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의 엄마의 이야기에 얼마 모였는지, 통장에 왜 넣지 않는지 확인하고 화를 냈다. 나도 참 그렇다. 통장에 입금하러 가면 되는데 허구헌날 잊어먹고 덜렁덜렁 나간다. 그런 나도, 그런 말을 듣고 있는 나도 참 싫다.

 재작년 설연휴 설날 아침에도 시어머니는 통장에 돈을 넣었는지 또 이야기를 꺼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시댁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한 이 집에서 아이들 용돈을 통장에 넣었는지 확인을 하는 말을 정초부터 듣는 것에. 그래서 어머니께 말을 했다. "애들 엄마인데 아무렴 그 돈을 가져다 쓰겠어요? 보태주면 보태줬지. 저에게 앞으로 통장에 넣었는지 확인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니가 닦아 쓸라고 해서 그런다. 와. 와따! 며느리한테 한방 먹었네."하셨다.


 지난 주 시댁을 다녀오는 길에 남편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니네 엄마가 통장에 입금했는지 안했는지 확인해라."라고. 통장을 들고가는 정신 머리는 없지만, 설령 그 단돈 오만원 십만원을 가져다쓴다고 해도 나를 위해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쓴다고 해도 그게 그렇게 확인 받고 검사받을 일인가. 

 그 지지부진한 무력감의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 단돈 오만원을 어쩌다 꺼내쓰는 상황의 수치심도, 엄마가 애들 돈을 가져다 쓰는지 시어머니, 남편, 급기야 딸에게까지 확인받고 검사받아야 되는 내 처지가 서글펐기에 소극적 대응을 한 것이었다. 

 오늘 은행 ATM기를 지나오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통장이 저 은행거야. 엄마가 다음에 통장에 입금하는 법을 알려줄께. 너네가 용돈받으면 직접 넣어."

 


 말도 안되는, 푸대접이나 받는 잡무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 잡무에서 벗어나는 시기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는 이 시점이라니.


 감시와 검사를 한다고 당신들의 권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님을 꼭 깨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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