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저항은 입금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기
시어머니는 아이들에게 5만원씩 주셨다. 그리고 다음에 가면 저금했는지, 아이들 통장에 넣었는지 얼마인지 물어보았다.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의 엄마의 이야기에 얼마 모였는지, 통장에 왜 넣지 않는지 확인하고 화를 냈다. 나도 참 그렇다. 통장에 입금하러 가면 되는데 허구헌날 잊어먹고 덜렁덜렁 나간다. 그런 나도, 그런 말을 듣고 있는 나도 참 싫다.
재작년 설연휴 설날 아침에도 시어머니는 통장에 돈을 넣었는지 또 이야기를 꺼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시댁에서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한 이 집에서 아이들 용돈을 통장에 넣었는지 확인을 하는 말을 정초부터 듣는 것에. 그래서 어머니께 말을 했다. "애들 엄마인데 아무렴 그 돈을 가져다 쓰겠어요? 보태주면 보태줬지. 저에게 앞으로 통장에 넣었는지 확인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니가 닦아 쓸라고 해서 그런다. 와. 와따! 며느리한테 한방 먹었네."하셨다.
지난 주 시댁을 다녀오는 길에 남편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니네 엄마가 통장에 입금했는지 안했는지 확인해라."라고. 통장을 들고가는 정신 머리는 없지만, 설령 그 단돈 오만원 십만원을 가져다쓴다고 해도 나를 위해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쓴다고 해도 그게 그렇게 확인 받고 검사받을 일인가.
그 지지부진한 무력감의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 단돈 오만원을 어쩌다 꺼내쓰는 상황의 수치심도, 엄마가 애들 돈을 가져다 쓰는지 시어머니, 남편, 급기야 딸에게까지 확인받고 검사받아야 되는 내 처지가 서글펐기에 소극적 대응을 한 것이었다.
오늘 은행 ATM기를 지나오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통장이 저 은행거야. 엄마가 다음에 통장에 입금하는 법을 알려줄께. 너네가 용돈받으면 직접 넣어."
말도 안되는, 푸대접이나 받는 잡무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 잡무에서 벗어나는 시기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는 이 시점이라니.
감시와 검사를 한다고 당신들의 권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님을 꼭 깨닫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