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해교사입니다.

드디어 자격증이 쓸모 있게 되었다.

by 설레는삶

10여 년 전 회사를 그만두었다. 육아라는 핑계를 대면서.

왜 난 핑계라고 할까? 많은 직장인 여성들이 이런 이유로 퇴사를 한다. 가정과 일, 육아를 제대로 병행하기란 쉽지만은 않다. 나 또한 자신이 없었다. 첫째는 시어머님께서 봐주셨다. 주말이면 아이를 만나러 시댁에 갔다 왔다.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집안일을 대충하고 다녀도 달리 상관없었다. 회사일은 내 적성과 맞지도 않았다. 직장과 적성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왠지 사치스러운 느낌도 든다. 돈을 벌기 위해 들어간 곳이니깐 적성 이 따위 따지지 말고 열심히 하는 게 맞는 거다.


잔말 말고 일단 일해!!!!!

그날그날 근무시간을 때우듯 다녔다. 힘들어도 퇴사를 말할 만한 근거가 약했다. 사회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포기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실은 그 당시에 적성이란 것을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직장생활이 다 그런 것이겠지라고 여겼다. 다른 출구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둘째를 낳게 되었다. 온전히 첫째와 둘째를 남편과 내가 케어하면서 직장을 병행해야 했다. 그 무렵 다니던 직장이 상황이 어려워졌다. 출산 휴가를 맞은 나는 복귀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내 의사보다는 회사 상황에 따른 것이었지만 난 육아를 핑계 삼아 오히려 잘 되었네라고 받아들였다.


10여 년의 직장생활 동안 더 좋은 성과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다지 애착을 갖지 못했다. 주어진 틀 안에서 상사에게 혼나지 않을 정도의 아웃풋만 추구했던 것 같다.

그래도 30대 시절 나를 조금이나마 빛나게 해 줄 수 있었던 것 직장여성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로 정신없는 시간이 이어질 줄 알았다. 물론 하루가 바삐 돌아갔지만 마음의 허전함을 계속되었다. 그래서 뭔가를 계속했다. 배우기를 일단 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격증을 준비했다.

그동안 몇 가지를 마련했지만 제대로 활용해본 적은 없다. 그중에서 가장 어렵게 딴 것이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다.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겨우 합격했다. 그러나 취업하기는 어려웠다. 2년 이상 한국어교실에서 봉사를 하다가 결국에는 그만두었다. 자격증을 가지고 취업하는 건 포기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서 시청에서 문해교사를 뽑는 게시판을 접했다.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쳐드리는 것이다. 자격조건을 보니 '한국어교원자격증 소지자'였다.

바로 지원했다. 합격이었다. 드디어 자격증이 쓸모 있게 되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여러 가지 자격증을 마련했다. 물론 자격증을 따고 나서 모두가 새로운 일을 할 수는 없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 공부하는 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노력했던 순간들이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뭔가에 몰두하며 지냈다. 언제 가는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 하면서

이렇게 늦게라도 내가 노력한 결과물로 새로운 일을 힐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나이에 국한되지 않고 내가 할 수 일이라는 거다.


합격 이후 오래지 않아 내가 근무할 복지관이 배치되었다. 기존에 공부를 해오셨는데 코로나로 수업이 잘 이뤄지지 못했다.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여 걸려에 위치한 곳이다.


어르신들을 상대로 어떻게 수업을 해나갈지 막막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내가 이 분야에 맞는 건지 알 수없고 어떤 능력을 쥐어짜 내며 진행해 나갈지 상상은 안된다. 어떤 분들을 만날 건지도 사뭇 궁금하다.


나는 문해교사입니다.


내가 가르쳐드릴 수 있는 것은 한글이라는 글자이다. 궁극적인 문해교사 역할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보면서 수업의 농도를 짙게 새겨보고 싶다. 또한 내가 어르신들로부터 어떤 걸 배우게 될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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