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직일까

날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있어 좋다.

by 설레는삶

문해교사로 일한 지 6개월에 접어든다. 일주일에 세 번씩 복지관으로 출근한다. 근무시간이 오후 1-5시까지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일찍 점심을 먹고 버스에 오른다. 12시 40분 정도에 도착한다. 수업준비도 미리 할 겸 웬만하면 일찍 도착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적이 있던가? 그저 지각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녔다.


일찍 도착해서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싶지만 어김없이 어르신 몇 분이 와 계신다. 도란도란 뭔가 이야기하시면서 수업 시작을 기다리신다.

아직은 마스크 벗기가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시원한 물 한잔이나 달달한 맥심 믹스커피 한잔을 나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숙제 검사를 하거나 먼저 오신 분들에게 복습의 기회를 드린다.


한 시간씩 세 반의 수업을 이어간다. 어르신들 눈빛을 보면서 수업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파악해본다. 짧은 경력이지만 몇 가지 터득한 게 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르신들이 교재에 빈칸을 채우고 있을 때 내가 새로운 것을 알려드리려고 칠판에 다가가는 경우가 있다.

‘아 참’ 혹은 ‘잠시만요’라는 환기시키는 말을 하면서 일어서서 설명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분들은 교재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한곳에 집중하시면 또 다른 추가되는 행동을 이어나가기 힘들다. 젊은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책을 보고 있을 때 상대가 말을 걸면 대답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소통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어르신들은 이게 어렵다. 한 동작을 멈추고 내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행동 전환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즉 한 번에 한 개씩만 해야 한다.

수업에 집중한다고 해서 선생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만이 아니다. 동시에 여러 개는 힘들고 하나씩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성인문해교실의 노하우는 여러 가지 있을 거다. 난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우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하면 모든 어르신들이 한글을 술술 읽을 수 있게 해 드릴 수 있을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고민하다 보면 자잘한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럼 다음날 수업에 적용해본다. 같은 글자를 이런저런 방법을 써가면서 반복해서 알려드린다. 세상에 외칠 만큼 대단한 노하우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르신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수업을 듣기를 바랄 뿐이다. 한 글자라도 머릿속에 확실히 남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즐겁다. 늘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속상해하기도 한다. ‘욕심부리지 말고 성실히 수업에 임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늘 부족함을 느낀다. 누구를 이기려는 마음도 아니다. 어르신들의 삶이 한글을 배워서 조금이라도 변화되면 좋겠다.


문해교사로 일하면서 내가 이렇게 어르신들을 좋아했나?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타심이 이런 걸까? 혹시 문해교사가 나에게 천직인가? 좋아서 일을 한다는 게 이런 건가? 부족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시고 문해교실에 오는 게 늘 기다려진다는 말씀을 듣고 있으면 내 마음까지 풍성해진다. 날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분야에서 십 년 이상 일하신 분들이 허다하다. 나 같은 새내기 문해교사가 감히 ‘천직’이라는 말을 꺼내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일하는 게 좋은 걸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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