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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는삶 Apr 25. 2022

문해수업 4월 이야기

내가 사는 동네는요~~~


문해교사로 일을 시작할 때쯤 걱정만 앞서던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생각은 ‘수업을 어떻게 하지’라는 걸로 가득했다. 고민을 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3월 말이 되니 4월 수업내용에 대해 계획을 세워보았다.


봄이 되면 나들이를 많이 가는 것에서 수업내용을 끌어왔다. 4월 주제는 ‘여행’으로 정했다. 대주제는 정했지만 매주 소주제를 어떻게 진행할까를 생각하면서 계획안을 마련했다.


1주 차:내가 사는 동네

2주 차:전국 지역 알아보기

3주 차:지역 특산물 알아보기

4주 차:내가 살던 고향은~~~


주차별로 소주제는 정했으니 각 단계별 수업내용을 채워나갔다.


초급:내가 사는 집주소 써보기

중급:동네에서 자주 가는 장소 알아보기

고급:동네 장소나 동네 친구 소개하기


계획안을 만들어 놓은 자체만으로도 수업에 자신감이 붙었다. 계획안은 방향성과 일관성을 제시해준다. 그러니 반드시 필요하다. 엉성한 계획일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나아갈 곳을 알려주기 때문에 당혹감이 덜하다. 실제로 수업에 연계하다 보면 ‘이 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일단 첫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


1주 차 수업인 ‘내가 사는 동네’를 진행했다. 지난주 숙제 검사를 마치고 동네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내가 사는 곳 주소를 직접 써보기다. 어르신들은 주소를 대부분 외우고 다니신다. 우리가 살면서 이름, 주소, 전화번호는 꼭 알아야 불편하지 않다. 이것들을 모르면 은행, 관공서, 문화센터, 온라인 쇼핑 등 힘든것을 다 나열하기 힘들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이것만은 꼭 쓸 수 있기를 바랐다. 한글실력이 낮더라도 말이다.


초급자 분들은 동네 지도를 보여드리면서 주위 지역과 비교해드렸다. 지역 지도를 보면서 면적과 위치를 확인했다. 수업자료로 활용하려고 지역 지도를 찾아서 확인했는데 어르신들 수업에 적합한 것을 찾기 어려웠다. 지역명 글씨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시, 구, 동을 면적별로 비교해서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곳이 대략 동쪽인지 서쪽인지 혹은 면적은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동이름까지 보여드릴 수 없으니 답답했다.

물론 시간을 두고 다양한 자료를 찾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도 있을 거다. 매번 자료를 찾을 때마다 글씨 크기와 글씨 색깔 때문에 내용 전달력에 한계를 느낀다. 글씨 색깔이 조금이라도 선명하지 못하면 제대로 읽을 수 없다. 한글 읽기에 수월하신 분들도 이 부분은 해결할 수 없다. 눈이 침침하니 알아볼 수가 없는 거다. 내 나이도 중년이 넘어서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눈알이 뻑뻑하고 아프고 튀어나올 듯 고통이 따른다.

매번 구미에 맞는 자료를 완성하다가 시간을 보내기도 힘들다.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수업자료를 마련한다. 자료의 부족한 부분은 수업 중에 즉흥적으로 보충해가면서 해결해나간다.



‘내가 사는 동네’ 특징을 말해보기를 하면 어르신들이 뭔가 술술 말씀을 하실 줄 알았다. 예를 들면 00으로 가면 00 공원도 있고 00으로 가면 00 마트도 있고 00 병원도 있어서 살기 좋아요!라고 하실 줄 알았다. 그럼 그 대답에 따라 간판명 쓰기 나 동네 자랑 글쓰기를 해보려고 했다.


그건 내 착각이었다. 대상자가 쉽게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게 중요했다. 광범위한 질문보다도 단답형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질문을 바꾸었다.


1) 장 보러 갈 때 어디로 가세요?

2) 물리치료받으러 어느 병원으로 가세요?

3) 집 근처에 어떤 학교가 있어요?


와 같이 경험에서 쉽게 말할 수 있어야 어르신도 당황하지 않으시고 신나게 말씀하신다. 매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넘쳐나면 수업이 얼마나 재밌을까 싶지만 나도 우물쭈물 해댄다. 어르신들은 알고 있는 내용도 막상 말로 하려면 무슨 말을 하실지 모르신다.

동네 자랑을 한 후에는 친구 소개하기를 하였다. 동네 친하신 분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다. 사람에 대해 설명을 도울 수 있도록 형용사 표현들을 준비해 갔다. 다양한  형용사를 보면서 외모와 성격을 묘사하는 것은 꽤나 도움이 되었다.  


한글을 잘 읽는 분들도 막상 정확하게 글씨를 쓰지는 못하신다. 쓰기와 발음이 다르게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계속된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재밌게 연습할 방법은 바로 그들의 경험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효과적이라 여긴다. 과거를 소환해내서 글로 남기는 것은 어르신들에게도 소중한 유산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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