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푹푹 찌는 더위가 계속되었다. 일요일인 오늘도 어김없이 자동차 속 내비게이션 목소리는 엄청 더울 거라는 예고를 해댄다. 핸드폰에서는 폭음이니 바깥 활동을 자네하라고 경고 메시지가 울린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가족들 모두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어제 구입한 책을 읽었다. 고요한 집안에서 30분 정도 소설책을 읽고 있으려니 나 자신이 더 고요해진다. 남편이 슬슬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어 여름 소나기가 내리네?’라고 말한다. 나는 서둘러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 진짜로 소나기네!!!’
빗소리를 들으려고 나만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딸아이방 옆의 작은 베란다에서 캔핑용 의자에 앉아서 베란다 창문을 열어젖힌다. 차 소리가 시끄럽게 나지만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빗소리가 주는 반가움이 더 크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 조용히 내리는 이슬비, 갑자기 쏟아붓는 소나기 등 모두 좋다. 다만 비가 갑자기 많이 양이 내려서 비피해만 없으면 좋겠다. 마냥 비가 온다고 좋다고 말하고 싶은데 가끔 뉴스에서 비피해 소식이 들리면 어찌할지 모르겠다. 좋다고 말하면 푼수가 될 것도 같다. 암튼 나는 비가 좋다.
바가 내리면 세상이 더욱 고요해지는 듯하다. 참 이상하다. 우둑우둑 쏟아지는 소리가 시끄러울 법도 한데 나에게 그렇지 않다. 빗소리가 세상의 온갖 잡소리를 집어삼킨듯하다. 내가 뭐라도 입 밖에 소리를 쏟아내면 비가 그 소리를 냅다 낚아챌 것 같다. 그래서 하고 싶은 소리도 더 꾹 참고 고요해지게 된다. 그냥 비가 승자인 거다. 우산을 챙겨나가지 못해서 길거리에서 비를 맞는 경우가 있다. 폭우가 아닌 이상 비를 맞는 것도 상관없다. 젖은 옷이야 빨면 되고 머리는 감으면 그만이다. 이럴 때는 머리숱이 많은 내가 다행이다. 머리가 젖어도 모양새가 그다지 나쁘게 확 변하지도 않는다. 곱게 다듬고 드라이한 머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나 머리숱은 적은 사람들은 비를 맞으면 꼴이 우스워질 것처럼 걱정한다. 가끔 달리기를 할 때 비를 맞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달리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달릴 때 바닥이 그다지 미끄럽지 않으면 비를 맞으며 신나게 나아간다. 빗속에서 뛰면 신발은 더러워지지만 첨벙첨벙 소리를 내면서 나아갈 때 희열을 느낀다.
눈이 내리면 세상 사람들 대부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눈보다 비가 좋다. 비는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것 같은데 눈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 대상이다. 비가 나를 품어주면서 편안히 쉬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앉아서 글 한편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거다. 여름날 소나기기 그치고 나면 공기 중에 비린내가 난다. 비린내가 맞는 표현인지 모르지만 뭔가 비릿한 냄새처럼 느껴진다. 좋다고 말하기는 뭐 하지만 이 냄새를 맡으려고 깊게 숨을 들이쉰다. 공기내음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면 좋겠다.
어느새 소나기가 멈춰버렸다. 이제 매미소리만 남았다. 매미가 성질내는 것 같다. 여름은 내 세상인데 소나기가 잠시 방해해서 신경질 난 듯하다. 매미 소리가 여름을 대표해야 하는데 빗소리에 본인들 소리를 낼 수 없으니 답답했겠지. 비 오는 동안 참았던 소리까지 더 쏟아내려고 매미가 안달이다.
비가 오면 세상이 멈춘 듯하지만 나는 더 생산적이 되나 보다. 책도 더 보고 싶고 글도 쓰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네. 근데 저녁으로 라면이 당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