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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화
monologue
에덴
by
이한
Sep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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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멀리서 보이는 바닷가.
남자와 여자가 마주 앉아 있다.
여자
:
(거의 다 핀 담배를 든 채)
난 외로웠어요. 그날.
그렇다고 행복한 날도 없진 않았어요.
아침이면 토스트를 만들어 식탁에 놓고,
전날 사놓은 원두를 갈아 커피포트 물을 내리며 커텐을 열었으니까요.
커텐을 열 때는 천천히 열면 안 돼요. 확 열어야 돼요.
그래야 빛이 한꺼번에 들어오거든요.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을 맞으면 아, 아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곤 잠깐 동안 밖을 보죠.
자동차 소리, 출근하는 사람들 발소리 뭐 이런 걸 들으면
오늘도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3분. 3분이면 충분해요, 그때는.
그다음은 며칠 전에 사놓은 책을 펴 봐요.
언젠간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던 책들이 하나씩 쌓이면 열 권이 넘어버려요.
그래도 난 시간만 나면 서점에 가요. 말 거는 사람이 없거든요.
거긴 전부 외로운 사람들이 와요. 남들이 책을 사던말던 관심이 없어요.
아무튼,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이해도 되지 않는 말들을 읽어요.
그냥 읽어요. 그거라도 붙잡고 있으면 뭘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성취감이랄까, 뭐 그런 거요. 눈은 글을 따라가는데
(머리를 콕 찍으며)여기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웃으며)사실 거짓말이에요.
아무 생각도 안 해요. 그냥 다음 장만 넘기고 있어요.
조용한 기분? 네. 그런 게 마음에 들어서
아침만 되면 식탁에 앉아요.
아마 나, 젠 체 하려고 읽을 걸요?
있어 보이려고 들고 다니면서. 한심해요, 전부.
남자
:
(펜을 내려놓으며)
그날은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주위엔 책상 위에 책 몇 권,
어제 마시고 내버려 둔 커피잔들이 전부였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간다.
걸음을 뗄 때면 들리는 소리들.
끼익, 끼익. 나무판자들이 움직인다.
가다 멈추어 서서 밖을 잠시 내려다본다.
그리고 다시 발을 떼면 들리는 소리. 끼익, 끼익.
상할 대로 상한 내 방 물건들.
그것들은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손을 데어야 할 뿐,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것들이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저 밖처럼,
그저 침묵으로 자기네들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어서 씻고 나가야겠다.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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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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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연기가 아름다워 무대를 만들고 글을 쓰는 청년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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