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옥이를 처음 제대로 만난 곳은 종로의 한 제과점이었다. 당시 제과점은 우리 같은 고등학생들에겐 별세계였다.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달콤한 버터 향과 우유 냄새, 유리 진열장 안에 질서 정연하게 놓인 크림빵과 카스텔라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길거리 국화빵으로 허기를 달래던 일상이 잠시 잊히는 화려한 공간이었다.
수영 훈련 때문에 늘 뱃속에 거지가 든 것처럼 배가 고팠지만, 그날만큼은 눈앞의 단팥빵보다 맞은편에 앉은 자옥이가 더 신경 쓰였다. 나는 자꾸만 헛기침을 하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쪽지를 한 달이나 늦게 봤다니까. 내가 원래 공부에 너무 매진하다 보니 가방 깊숙한 곳은 잘 안 봐서 말이야.”
되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자, 자옥이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난 내가 차인 줄 알았어. 뉴욕제과 안에서 한 시간이나 서성였는데 말이야.”
그 말을 하던 자옥의 볼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수줍음 많은 열일곱 소녀의 진심이 훅 끼쳐왔다.
우리는 빵을 조금씩 떼어 입에 넣으며 어색한 침묵을 달랬다.
수영부의 고된 훈련 이야기, 수영 팬티만 입고 물빳따 맞던 이야기, 무서운 하마 선생님 이야기, 그리고 다음 달에 있을 모의고사 이야기까지.
얼마 뒤, 우리는 태릉 쪽으로 소풍을 갔다. 70년대 초반 태릉은 지금과는 달랐다. 선수촌 주변으로 끝도 없이 넓은 배 과수원이 펼쳐져 있었다. 하얀 배꽃이 눈송이처럼 내려앉은 그 길은 종로의 번잡함을 잊게 할 만큼 평화로웠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과수원 길을 나란히 걷는데, 자옥의 어깨가 내 팔에 살짝 스칠 때마다 심장이 수구 경기 마지막 쿼터처럼 요동쳤다. 그때 문득 입가에 맴돌던 노래가 있었다. 가사는 잘 몰랐지만, 우리를 깨우던 동요 곡조 하나.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끗.”
서수남, 하청일 콤비가 불러 막 유행하기 시작했던 〈과수원길〉이었다. 자옥과 첫 데이트를 했던 해에 태어난 노래. 훗날 알게 된 가사처럼 우리는 둘이 걷는 길에 말이 없었고, 자옥의 쌩끗 웃음만 있던 길. 그 길은 두 살 늦게 태어난 박인희의 ‘끝이 없는 길’이 되길 바랐다.
하얀 꽃잎이 바람에 날려 자옥의 머리카락 사이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걸 떼어주고 싶었지만, 손을 뻗을 용기가 없어 그저 걷기만 했다. 소년에게는 그런 날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색채가 갑자기 선명해지고, 내일이 오는 것이 기다려지는 그런 날. 나는 그날의 배꽃 향기를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