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빙긋①] 화장실 낙서와 수동식 비데

by 강희준

벌써 얄개 수필 10편을 올렸네요. '빙긋 수필' 10편쯤 쓰고, 얄개전을 다시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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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도서관 2층 남자 화장실. 그곳엔 대학생도 울고 갈 팽팽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2층 화장실 첫 번째 칸에 앉으면, 적나라한 그림 한 컷이 눈길을 끈다.


'이거 그린 놈 대학생 아니다. 대학생이면 좀 더 잘 그렸어야지!'

촌평은 그림보다 거칠다. 아쉬움을 외면당한 채 엄한 꾸지람을 달고 있다


'낙서하지 마. 세끼들아!'

누군가 빨간 볼펜으로 맞춤법까지 정리했다.


'↙틀렸음 새끼(○)'

빨간 글씨는 다시 길게 휘어진 화살표에 끌려가,

굵은 사인펜에게 얻어맞았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쉐끼들아!'


머리 위에서 쇠파이프를 타고 내린 찬물 한 통이 푸하하 쓸려나가고, 파란 창에 구름 반쪽이 갸우뚱 걸려 있다. 그래 어쩌면 아주 오래전엔 '세끼'가 맞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담엔 '쉐끼'로 변하지 않을까.


맞춤법이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

세상에 변함없이 맞는 말이 얼마나 될까.

호주머니를 뒤적거려 나도 그 밑에 적었다.

'우와, 재밌다. 다들 어디 있니?'

낙서금지.jpg 우와 재밌다, 다들 어디 있니? 삽화:정종해


아이들의 하찮은 낙서 같지만 어른들도 새겨들을 재치가 있다.

크면 둥지를 떠나듯 지금은 어디쯤 가 있을까.


잉크 빛이 바랜 글씨만큼 키가 훌쩍 커버렸을 아이들.

그들은 자기들이 낙서하고 간 자리조차 잊고 살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공방(攻防)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글쟁이랍시고 쓰는 나의 글이 녀석들의 낙서만큼이나 남의 가슴에 남을 수 있을까.


아! 그러나 이건 사치스러운 걱정이었다. 벽엔 빈 휴지걸이. 휴지가 없다. 어찌해야 하나.

습관처럼 그냥 들어와 앉은 후회라니……. 스치는 생각은 4가지쯤이다.


첫째, 엉거주춤 옆 칸으로 건너가는 방법.

둘째, 남이 버린 휴지를 조심스럽게 다시 쓰는 방법.

셋째, 무작정 도와 달라고 소리치는 방법.

넷째, 옆 칸에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어쩌겠는가. 밖을 엿보았다. 엉거주춤한 동작으로 문을 여닫기 여러 번. 틈새는 있었으나 이동 자세가 나빠 잽싸지 못하므로 첫째 방법은 어려웠다. 게다가 옆 칸에 휴지가 있다는 보장도 없다. 포기다.


둘째 방법을 위해 휴지통을 살폈으나 쓸만한 게 없다. 난감했다. 그렇다고 셋째 방법처럼 Help me를 외칠 나이인가. 넷째 방법뿐이다. 기다려야 한다.


두 번째 칸에 앉았더라면 좌우로 기회가 있겠지만 한쪽 방만 바라고 있을 수밖에. 그렇다고 세 번째 칸에 가는 사람에게 두 번째 칸에 들도록 알릴 수도 없다.


아까 낙서를 만났을 땐 첫 번째 칸에 든 것을 행운이라 생각했으나 절박한 지금은 그 반대다. 드디어 옆칸에 사람이 든다. 어른일까 아일까. 인기척으로 보아 아이다. 쉽게 말을 붙였다.


그러나 이 또 웬... 자기 쓸 것밖엔 없단다. 가난한 이웃이 든 것이다. 하지만 중학생인 이웃은 착했다. 자기가 나간 다음 갖다 주겠다는 것이다. 이젠 그가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친해지고 싶어 다시 말을 붙였다. "이방 낙서 봤니?" "네." 뜻밖이었다. 모르면 한 번 초대하려 그랬다는 내 말에 픽 웃던 이웃은 나 때문인지 끙끙대며 서둘렀고 나는 저린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아저씨!" 칸막이 밑으로 휴지 한쪽을 불쑥 드미는 이웃. 웬 거냐고 물으니 두 장 중에 한 장을 주는 것인데 그다음은 자기를 따라 하란다. 조금 전 낙서 얘기로 친해진 덕분이 아닐까.


초벌은 휴지로 닦고 마무리는 변기통 물을 손에 묻혀 따라 했다. 왼손으로 하란다. 영특한 놈. 손을 사용하므로 '수동식 비데'네 했더니, 친구에게 배웠단다. 착한 이웃이다.


방법만 알려주고 나갈 수도 있는데 제 몫을 나눠주며 희생을 한 친구. 자동판매기 앞에서 콜라를 권하며 마땅한 화제가 없어 낙서 얘기를 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 녀석은 뜻밖에도 낙서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사인펜의 주인공.


개떡, 찰떡은 제 엄마의 버릇 같은 비유란다.

낙서 중 그 찰떡과 개떡이 압권이었다고 추켜 주니 해맑게 웃는다.

'쉐끼'란 표현도 물었다.


“새끼보다 다 세 보이잖아요. 그래서 입소리대로 적었어요.”


예뻐라.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아이.

험한 욕이 난무하는 세상에 '새끼'는 욕도 아니다 싶어,

새끼손가락으로 녀석의 콧등을 찌르며 같이 웃었다.


밤새 메우지 못한 원고지를 안고 도서관까지 와서 봉변을 당할 뻔했는데 귀인을 만난 셈이다.

나이에 비해 분명 한 수 위인 친구. 그 덕에 수동식 비데가 사실은 더 깔끔하다는 것도 체험했다.

나는 이제 화장실에 휴지 없이도 갈 수 있다.


수동식 비데처럼, 정형의 틀을 벗고 글을 써 볼 일이다.

맞춤법도 잠시 잊고 입소리를 살려서. 글투보다는 말투(구어체)로.

한자말보다는 우리말로. 꾸밈말도 줄이고.


개떡 같은 세상에서도 찰떡같은 소재를 찾아볼 일이다.

해맑은 아이처럼.

- 2002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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