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살기는 재작년에 한 달, 작년에 두 달 살았고, 올해 다시 한 달을 계획하고 있다.
작년에 제주도에서 보낸 60일간의 여정은 오롯이 두 발에 의지한 시간이었다. 렌터카 없이 뚜벅이로 지낸 것이 대체로 만족스러웠지만, 가끔 시련도 있었다.
낯선 정류장에서 갈아탈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 차는 1~2시간 뒤에 있기도 했다. 그런 때엔 행선지를 포기해야 하는데, 마음 한구석에 고인 짜증 한 움큼이 마주 선다.
그럴 때 나는 한라산으로 향했다. 제주도 어디서든 고개만 들면 빤히 보이는 산.
환승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고, 복잡한 노선을 헤맬 일도 없다. 어디서건 버스 한 번만 갈아타면 닿는 곳. 그 단순함이 좋았다. 한라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만 길을 내주던 산. 그 산에 한 달 사이에 세 번이나 올랐다.
칠순 노인에게 한 번 오르기도 쉽지 않은 길인데, 세 번이나 오른 것은 행선지를 포기한 날도 여러 번 있었다는 뜻. 누군가는 '쓸데없는 고집'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주 생활 두 달 끝에 10kg 감량이라는 목표도 갖고 갔으니, 10시간 걸어야 하는 백록담행은 또 다른 만족감을 주기도 했다.
정상까지 오르막 다섯 시간 반, 내리막 네 시간 반. 도합 열 시간의 산행.
앞질러 가는 젊은이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 속도대로 묵묵히 내딛는 발걸음은 단 한 번도 나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백록담에서 7학년은 보지 못했다. 거기까지 가려면 각 지점마다 통과시간이 정해져 있고, 통제 요원들이 깐깐하게 막아서기 때문이다. 걸음 느린 노인이나 체력이 부치는 이들은 중간에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냉정한 기준이지만, 그 단호함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어느 날은 성판악으로 올라 관음사로 내려오고, 또 어느 날은 그 반대 코스를 택하기도 했다. 관음사 코스는 몸이 훨씬 고되지만, 하산 후에 탈 수 있는 버스가 자주 있어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7월 11일 첫 산행.
정상에 섰지만 사진에서 보이듯 바람이 거셌고, 백록담은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대입 시험장에 와 놓고선 ‘내년에 다시 와야겠구나’ 하고 예감하는 수험생의 마음과 비슷했다.
“다시 오마.”
거센 바람과 자욱한 구름 속에서 아쉬운 약속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7월 17일 두 번째 산행.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상에 올랐지만 사방은 여전히 안개뿐이었다.
‘참으로 친해지기 어려운 산이구나.’
체념하며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한쪽에서 "오, 보인다 보여!"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올라갔다. 그때였다. 구름이 슬쩍 걷히는 틈에 열렸다가 다시 닫히며, 감질나게 백록담이 얼굴을 드러냈다. 찰나의 순간, 놓칠세라 카메라에 담았다. 산신령님이 두 번째 산행임을 알아봐 준 것 같아, 연신 굽신거리며 눈도장을 찍었다.
7월 31일 세 번째 산행.
이날은 백록담을 실컷 보았다. 동영상도 여럿 찍어 왔으니 더 바랄 것도 없다. 그래서 그날의 사진들을 콜라주로 묶어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에는 두 번째 산행의 풍경이 가장 또렷하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눈으로 바라보던 백록담. 다섯 시간을 올라야 찾을 수 있는 묵직한 만족감. 그날의 성취감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벅찼다. 아마도 그것은 칠순 노인이 부릴 수 있는 가장 근사하고도 건강한 고집이었을 것이다.
제주도 어디서든 올려다보이던 그 산이 이제는 내 마음 한가운데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가끔, 나는 그 산과 한 달에 세 번이나 데이트를 즐겼던, 그 뜨거웠던 여름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