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 봄, Y고교 교정에도 어김없이 개나리가 만발했었다. 검정 교복들이 우글거리는 학교를 노란빛 울타리가 감싸고 서서 소란스러웠다. 꽃빛이 대수냔 듯 뛰노는 선머슴 중에는 죄수들이 간혹 보였다. 두발 단속에 걸려 까까중이 된 놈들이다.
그 시절 얄개들에게 머리 스타일은 바지 밑단을 늘려 나팔바지를 만드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빡빡머리가 되는 것은 크나큰 걱정거리였다.
교실 창가에서 나는 까까중들을 측은히 쳐다보며 친구 따라 처음 간 교회를 생각했다. 검게 윤이 나는 피아노 의자를 노랗게 물들인 연주자의 스커트, 스커트에 어울린 노란 머리띠.
개나리 빛 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여학생은 내 눈을 자꾸 잡아당겼다. 집에 온 후에도 멜빵 스커트의 그녀는 밥상 위에, 책꽂이 위에, 올려다본 천장에서도 떠나질 않았다.
3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개나리밭에 있던 그녀의 환상이 떠났을 때, 교실엔 김치 냄새가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때 갑자기 교실 뒷문이 열리며 두 외침이 동시에 들렸다.
"하마다!"
"누구야? 벌써 도시락 깐 놈들이."
앞의 외마디가 뒤의 버럭 소리에 잠기며 교실은 삽시간에 조용해지고 하마(럭비선수 출신 체육 선생님)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너, 너, 일어서! 맨 뒤에 안경, 또 너 짱구도."
불려 나간 나는 휘둥그레한 표정으로 밥을 먹지 않았음을 자신 있게 설명했다. 그러나 하마는 관계없다는 듯 뒤춤에 들고 있던 바리캉을 코앞에 흔들었다. 두발단속이었던 것이다.
아뿔싸, 그렇게 해서 앞머리가 규정보다 길다고 판정된 넷의 앞머리엔 손가락 길이만큼씩 고속도로가 하얗게 났다. 교모를 쓰면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늘 모자를 쓰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그들은 다음날 까까중으로 등교할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까까중머리로 토요일에 갈 교회를 생각하며, 지난주 깎은 머리로 또 타낼 수 없는 이발비를 걱정하며 하마를 원망하고 원망했다. 어떻게 얻어낸 미팅인데...
오늘이 분명 월요일이 맞는가? 금요일쯤이라면 하루 결석을 감행해서라도 모자를 쓰고 교회엔 가 볼 수 있으련만 대책이 없었다.
마음을 정렬해야 하는 서예 숙제 중에도 생각은 갈라지고 갈라졌다. 지난주 이발 때 조금 더 짧게 깎았더라면 이런 수모까진 없었을 텐데. 하마가 나쁜 게 아니라 내 욕심이 화근이었다고 원망이 반성으로 바뀌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리캉 자국이 허연 머리 속살에 먹물을 발라 보는 것이었다.
먹물의 농도도 마침 적당해서 거울 속의 얼굴은 감쪽같았다. 이발기가 머리를 관통한 게 아니라 앞머리만 조금씩 깎였으므로 고개를 숙였을 땐 표시가 조금 났지만 고개를 들 때마다 거울 속의 남자는 거울 밖의 남자에게 놀라고 있었다. 교모도 써 보았다. 모자 밑으로 머리가 얌전히 눌린 모습과 까까중머리와는 천지 차이였다.
'그래, 이 머리라도 사수하자. 결코 이발소엔 가지 않으리라!'
저녁상을 물린 후 방에 돌아왔을 때 거울 속의 남자가 자신 있게 물었다.
'너희 아버지도 모르지?'
나는 동시에 대답했다.
'응! 학교 꼰대들도 모를 거야.'
거울 속의 남자가 왼손을 높이 들자 나는 오른손을 들었고 두 사람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낄낄거렸다. 하마터면 깨질 뻔한 거울도 못대가리에 달린 제 주제를 잊고 낄낄거렸다.
찻길에서 언덕길로 꺾어 들면 거기엔 언제나 우중충한 교문이 버티고 있었다. 아침이면 검정 교복들을 마구 삼켰다가 오후엔 꾸역꾸역 토해내던,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로 나도 빨려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선 내가 모자를 벗자, 친구들도 어제 머리 깎인 친구가 셋인지 넷인지 헷갈렸다. 띄엄띄엄 섞인 까까중들 때문에 교실이 밝은 조회 시간에 멍게 선생님은 갸우뚱 물었다.
"어제 머리 깎인 놈이 셋인가?"
예제서 킥킥대도 멍게는 멍했다. 담임도 모르는데 여러 교실을 돈 하마가 어찌 알랴. 콩닥거리던 나는 멍게가 나간 후, 기똥찬 아이디어라고 추켜 대는 친구들 틈에서 일어나 외쳤다.
"우하하, 이렇게 2주일만 버티다 깎으면 내 머리는 여전히 스포츠형이다."
친구들은 자기들의 승리인 양 좋아했다.
나는 옆모습의 층진 머리를 보이지 않기 위해 언제나 선생님을 주목했다. 공부는 더 잘되었고 늘 교모를 쓰고 다니는 모범생이 되었으며, 하교 후엔 방에서 공부만 했다.
매일 먹을 갈며 농도를 맞추느라 심혈을 기울이는, 기특한 아들의 방문을 열고 아버진 격려도 잊지 않으셨다.
"요번엔 서예 시험도 보는 모양이구나. 열심히 하거라! “
모의고사에 서예 시험을 보는 학교는 없다. 날짜는 어김없이 지나갔지만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체육 시간에 땀을 안 흘리는 방법과 필기할 때 고개를 안 숙이고 쓰는 방법 정도는 쉬웠다. 그러나 먹물 바른 자리가 가려워도 긁지 못하는 고통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큰 어려움이었다. 고통 앞에 나는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2주일간의 버팀은 저의 교만이었습니다. 이번 토요일 미팅만 지나면 당장 깎겠습니다. 제발 가렵지 않게 해 주세요.’
운명의 토요일을 목전에 두고 시작된 모의고사, 앞머리가 시킨 공부 덕에 시험은 수월했다. 그런데, 마지막 물리 시간에 물릴 줄이야. 수상한 짓도 하지 않았는데, 반쯤 왔다 가던 감독관 하마가 다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숙인 머리를 세웠다. 나한테 오는 건 아니겠지 했지만, 손바닥엔 어느새 땀이 배었다. 너무 가까이 온 하마. 나는 왼손으로 앞머리를 덮었다.
오른손에 들린 볼펜 꼭지가 떨고 있음을 보았을까, 하마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나의 왼손 중지를 젖히며 커닝페이퍼를 찾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손바닥에는 먹물이 묻어 있는 게 아닌가. 놀란 하마의 짝눈이 앞머리에 꽂히고, 나는 캄캄해진 눈을 감아 버렸다. 손바닥의 땀에 마른 먹이 녹아들었던 것이다.
하마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마의 먹을 손톱으로 긁어 댔다. 손톱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긴장의 교실에 종이 울리고 답안지가 걷힐 때, 나는 하마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한쪽 귀를 잡힌 채 끌려 나갔다. 이제 무자비한 하마에게 10초 안에 다운될 것이다. 나는 어떻게 쓰러져야 폼나게 당하는 것인가만 생각하고 있었다.
교단에 올라선 하마는 팔뚝을 걷어 부치면서 돌아섰다. 그런데 그는 웃고 있었다. 악다구니를 문 웃음이 아니라 미소로. 너무나 뜻밖이어서 어리둥절한 교실에 하마의 목소리는 또박또박 끊어졌다.
"이런 일은 개교 이래 처음이다. 이 녀석의 기발함을 뭉개고 싶지 않아서 이번만은 불문에 부친다. 내일까지 스스로 다듬고 오도록!"
교실은 술렁거렸고 손뼉 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답안지를 추리는 하마에게 다가서며 애원하듯 속삭였다.
"선생님, 월요일까지 깎고 오면 안 될-까-요?"
토요일 교회까진 가고 깎겠다는 소린데, 그는 못 들은 척 교실을 나갔다. 그러나 복도를 지나는 하마의 얼굴엔 미소가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