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칼국수

언제나 밤

by 무궁화

쿵쾅쿵쾅!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등산화를 신은 채
남자는 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단 1초의 여유도 없이 오른쪽 뺨을 후려쳤다
연달아 왼쪽 뺨도 내려쳤다
등산화로 쓰러진 내 등을 밟고 남자가 지나갔다
막내딸이 태어난 지 두 달이 될 무렵이었다
그날 밤 나는 오른쪽 눈을 잃었다
셔터 문이 쭉쭉 내려오더니 툭 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끝까지 내려와 멈추었다
그날 이후 나의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둠이 나의 공간을 지배했다.
희미해진 왼쪽 눈
왼쪽 귀를 통해 목덜미 쪽에 신경관이 얇아져서
망막이 떨어져 나갈 확률이 60%
밤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다
왼쪽 눈마저 잃을까 봐
주기적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바늘 수천 개가 내 눈 안으로 공격해
쳐들어와 찔러댔다
눈에 마취제를 바르고
레이저 시술을 하는데
눈을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한다
내 양손에서는 힘을 너무 주어서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턱은 플라스틱 위에 고정해야 하므로 쥐가 났다
순간순간 불빛 같은 것이 번쩍일 때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주삿바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호가 뇌를 장악했다
긴장한 몸에서는 자꾸만 땀이 흐르고 꽉 힘을 주는 양쪽 발은 자꾸만 떨리던 내 무릎을 지탱해 주지는 못 했다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해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날마다 어둠의 공포가 내 온몸을 지배해 왔다
나의 삶의 터를 희미함으로 덮어버렸다
불안한 마음은 언제나 적중한다
왼쪽 눈에서 복시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개, 네 개, 여섯 개 사물이 여러 개로 쪼개져 보인다
희뿌연 안개가 끼인 듯 뿐연 세상과 나는 마주 서야만 했다

부산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수술한 오른쪽 눈에 약을 넣고 붕대로 감아두었다
노란 고름이 차서 닦아내고 안약을 넣을 때면 코와 입으로 흘러내렸다
입안으로 흘러내린 안약은 입안을 더 쓰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술을 하고 나면 다시 세상을 보리라 믿었다
그러나 떨어져 나간 망막은 다시 끌어다 꿰맸을 뿐 시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눈 안은 고름으로 날마다 채워졌다
코와 입으로 안약이 흘러내린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눈알을 뒤집어서 떨어져 나간 검은 렌즈 망막을 찾아야 했던 나의 오른쪽 눈
밤마다 들짐승들이 나에게 마구 달려오는 무서운 꿈에 시달려야 했다
아파서 아픈 게 아니다, 슬퍼서 슬픈 게 아니다, 사람이 무서워서 무서운 게 아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두들겨 맞아서 눈을 잃었다고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이 아팠고 현실이 참혹했다
붕대를 감은 지 일주일 만에 풀고 보았더니
나의 앞에 앉아계신 나의 어머니
농사 일하던 그 옷차림 그대로 달려와 나를 간호하고 계셨던 나의 어머니
철도 없고 못난 나였지만 차마, 어머니 앞에서는 아픈 척, 힘든 척, 그리고 눈물도 흘릴 수 없었다
쓴 안약이 입안으로 흘러내려와서 목구멍으로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손수 자기 손으로 생쌀을 으깨어서 쌀 물을 만드셨다
우유 같은 흰쌀 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내 입안으로 넣어주셨다
나의 당신 어머니!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바보였을까요?
어머니 품에 안겨 나의 아픈 삶을 이야기했더라면 나의 삶이 이처럼 고달프지는 않았을까요?

나의 당신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어여쁜 막내딸을 위해 그 연세에 나의 몸을 씻겨주시고 머리도 감겨 주셨죠
나의 긴 머리를 빗겨주시면서 나의 등 뒤에서 소리 없이 우셨던 어머니
밥을 먹지 못해서 계속 토하기만 할 때 어머니께서는 나의 어깨를 토닥이시며 어머니 눈을 이식해 주겠노라 말씀하셨죠
나의 당신 어머니!
어머니 계신 그 먼 세상은 어떠신가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저도 데려가 달라고 수없이 많은 날들을 기도했었죠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딸이 이제 막 두 달이 된 아기를 안고 병원에 왔죠

여름에 고개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그런 아기를 새 옷을 입히고 새 양말을 신겨서 멜빵을 하고 앞으로 안고 병원 안으로 들어설 때 음식을 먹지 못해 계속 토하는 절 등 뒤에서 토닥이시다가 아기를 안고 들어선 손녀딸의 모습을 보시고 소리 내어 통곡하셨죠
저의 눈에서 피고름은 어느새 피 눈물이 되어 흘렀고

어머니 그 통곡 소리가 저의 애간장을 찢었답니다
희미한 왼쪽 눈으로 이 어린 아기를 키워야 하는 막내딸의 삶을 걱정하셨던 어머니
어쩌면 자신의 딸이 더 소중해서 손녀딸이 싫다고 말씀하셨던 어머니
그 손녀딸이 자라서 지금은 저에게 최고의 빛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하려 합니다

지난 동안 제가 살아왔던 아픈 기억들을 어머니께 이야기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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