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
그것도 그냥 망한 게 아니라 쫄딱 망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회사 돈을 가지고 잠적했다고 했다
법원에서 봉투가 집으로 왔다
회사의 모든 서류에 남자가 사인을 해서 결제 대금부터 직원들 월급까지 모두 이 남자가 다 떠안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무려 20억 원이었다
남자는 경기도 화성으로 말도 없이 떠나가 버렸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아이들과 나는 버려졌다
남자는 떠나간 후로 연락이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보내오던 생활비도 보내지 않았다
항상 생활비를 조금씩 받아서 썼기에 나는 돈이 없었다
당장 아이들 우윳값이 없어서 배달되어 오는 우유부터 끊었다
막내딸이 4살,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큰 딸이 고등학생이었다
삶이 막막했다
간절함, 절실함
나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일을 해야만 했다
나쁜 시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집 근처 곰탕 집에서 그릇 씻는 일을 시작했다
눈이 나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곰탕 그릇은 무거웠다
씻어내는 그릇보다 깨트리는 그릇이 더 많았다
제대로 씻기지 않은 그릇들이 있어서 자주 야단을 맞았다
처음 해보는 주방 일은 앞이 잘 안 보이는 사람이 하기에는 미치도록 답답하고 힘들었다
손님들은 밀려들었고 그릇들은 쌓여만 갔다
결국 3일 만에 쫓겨났다
간절한 만큼이나 생활은 어려웠다
당장 어린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다
결혼할 때 받은 반지와 목걸이, 팔찌 세트, 아이들 100일 돌 때 받은 금반지를 팔았다
싸가지고 갈 때도 몸은 한 짐이었지만 팔고 현금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한 짐으로 무겁기만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나 대신 길을 열어줄 사람도 없었다
내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일 자리를 찾아다녔다
작은 사출 공장에 다니게 되었다
불량품과 정품을 선별하는 일이었다
시력이 나쁜 나로서는 눈이 빠질 듯 시리고 아팠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박스는 불량이라며 다시 선별하라고 했다
더 이상 갈 곳도 나를 받아줄 곳도 없었다
나는 해내야만 했다
늦은 밤까지 잔업을 했다
그러나 내 시력으로는 불량 제품을 골라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장님께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닐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청을 했다
하지만 날마다 불량을 내는 나는 일주일 만에 스스로 그만두어야 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가 없었다
목구멍까지 삶의 무게가 차올랐다
그냥 이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다시 찾은 곳은
숯불갈비 집이었다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했다
출근을 하면 홀부터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부엌에 들어가서 저녁 준비를 도와야 했다
여기는 손님이 없어도 바빴고 손님이 많으면 더 바빴다
항상 11시를 넘겨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일반 손님은 많지 않았다 근데 주말만 되면 단체 손님이 밀고 들어왔다
홀 안에 연기는 자작하게 깔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주방에서만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러자 사장님께서는 그때그때 적절하게 알아서 눈치껏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제일 힘든 일은 뜨거운 불판을 바꾸고 다시 새것으로 교체해 주는 것이었는데 특히 어린아이들이 와 있을 경우에는 몇 배로 더 조심해야만 했다
오른손으로 집게를 사용해 불판을 들고 왼쪽 쟁반에 옮겨서 손님들 사이로 조심히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어린아이들이 언제 어떻게 불판 앞으로 뛰어올지 몰라 나의 긴장감은 배가 되었다
두 번째로 힘든 일은 불판을 닦는 일이었다
솔로 구멍 난 사이사이에 낀 음식물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나는 곰탕 집을 거울삼아 쫓겨나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많이 사용했다
드디어 과도한 스트레스와 어린아이들을 챙기고주방에서 불판을 닦는 것이 내 몸을 지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판을 닦는 도중에 나는 그만 뒤로 쓰러져 버렸다 역시나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강제로 그만두게 되었다
생활비는 항상 모자랐다
참혹한 만큼 간절했고 간절함은 내 생활을 답답하게만 했다
내가 일 할 곳은 정말로 없었다
더구나 숯불갈빗집에서 받기로 한 200만 원은 줄 생각이 없었다
그 돈은 한참 후에 사장님께 사정사정해서 70만 원의 돈을 받았다
당연히 나의 생활은 모든 리듬이 깨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때도 큰 딸은 마음의 정신적 장애를 안고 홀로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아픔을 통해 성숙해지고 고통을 통해 더 단단해진다고 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해야 할 일 들이 너무 많았다
어린 딸, 초등학생 아들, 고등학생인 큰 딸
아이들도 돌보아야 했지만 더 시급한 것은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 한 자락에는 햇볕의 빛도 아이들의 웃는 소리도 재잘거리는 모습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마음이 동하면 몸도 움직인다는 말처럼 나는 깊고 깊은 간절한 마음으로 영어 학원에 이력서를 들고 갔다
다행히 원장님께서 바로 학생들을 맡아 달라고 하셨다
눈 수술 이후 책을 보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 한채 영어공부에만 진념 했던 나는 용기반 절망반의 마음으로 학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무서웠던 남자
언제나 주눅이 들었던 나의 삶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가...
시력도 나쁜 내가 할 수 있을까?
영어 학원에 가기 전에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야만 했다
아무도 나 대신 용기 내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힘든 삶도 나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해야 했고 나의 길은 나만이 걸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행동으로 가는 그 길 위에는 언제나 태양이 길을 안내해 주었다
다행히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담당했다
보이지 않는 눈을 최대한 책 가까이에 대고 공부를 했다
아이들 가르칠 분량만큼 집에서 암기를 해 수업을 이어갔다
영어를 전공했지만 우리말과 달리 영어는 항상 힘들었다 다른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내가 시력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 채지 못 했다
그렇게 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24시간 영어 공부에만 집중하여야 했다
잠을 자면서도 영어 단어를 들으면서 자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은 할 수 없었고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큰 딸은 담임선생님께 집 사정을 이야기해서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고 일찍 집에 와 어린 동생들을 챙겼다
그 어린 큰 딸은 마음의 무게만큼이나 어깨의 무게도 감당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없는 아들은 누나에게 짜장면 먹고 싶다고 탕수육, 치킨,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며 날마다 보챘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큰 딸은 담임 선생님께 처지를 이야기했더니 저소득 계층 무료 급식 쿠폰을 주시면서 동생들 맛난 것 사주라고 하셨다
그날 학원 일을 마치고 집에 왔더니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불리 먹고 두 아이는 자고 큰 딸은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마음을 열어 큰 딸에게 관심을 보이고 살폈더라면 정신 질환에서 벗어났을 텐데... 그때는 내가 너무 지쳐있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암기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조금 보이던 왼쪽 눈은 나의 공부하는 양을 이겨내지 못했다
특히 밤에 수업을 하다 보니 나의 왼쪽 시력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학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싱크대 안에는 음식물과 그릇들이 넘쳐흘렀고 부엌에는 발 디딜 곳 없이 아이들의 옷과 과자 봉지 등으로 들어차 있었다
4살이었던 어린 딸은 씻지도 않은 채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잠을 자고 있었고, 아들은 만화를 보면서 거실에 잠들어 있고는 했다
날마다 지쳐만 갔다
먹고 살아가야 할 현실에서 삶은 정말로 넉넉하지가 않았다
책을 보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용을 썼다
나는 집중력, 이해력, 기억력 면에서 한참 떨어졌기에 공부는 또 다른 나의 삶을 고단하게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견뎌내는 삶을 살던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