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여름의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는 날이었다
뜨거운 여름빛만큼 견디기 힘들었던 긴 하루였다
몇 년 만에 연휴가 겹친다며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려고 들떠있는 분위기만큼이나 나는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학원에서 수업 중이었다 원장 선생님께서 빨리 집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4살 된 막내딸이 아파트 입구에서 놀이터로 가려고 길을 건너는 순간에 배달하는 마트 봉고차에 치여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어린 아들은 동생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잘 보살피지 못 한 죄의식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 한 채 자폐증 환자와 일반인의 중간 경계점에 머물러 있다
아마도 어린 아들의 눈에는 어린 동생의 머리가 깨져 바닥에 피가 적셔진 모습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에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도 많이 나와 있었다
큰 딸은 이날도 일찍 집에 돌아와 두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다 큰 딸은 남동생에게 막냇동생을 데리고 조금만 놀이터에 가서 놀다 오라고 했다
동생들에게 핫케이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핫케이크는 완성되지 못했다
굽기도 전에 119 구급차가 큰 소리를 내면서 아파트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갑자기 분리수거하던 사람들과 놀던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베란다를 통해 큰 딸의 귀에 들려왔다고 했다
순간 두 동생이 놀이터 가는 시간과 맞아떨어졌다
큰 딸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신발도 신지 않고 계단으로 뛰었다
큰 딸이 도착했을 때 막냇동생은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이마를 깨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콘크리트 길은 붉은 피로 물들여 있었다
119 아저씨가 아이를 살려야 한다고 머리를 수건으로 싸서 꾹 눌렸다
갈라진 틈에서 더 이상의 피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큰 딸은 울면서 구급차에 탑승했다
동생의 손을 꼭 잡으며
응급실로 향하는 도중에 어린 동생의 마지막 말
' 언니 나 너무 아파.. '
그리고 그 뒤로 어린아이는 숨이 멎었다
큰 딸은 내 동생을 살려 달라며 소리를 쳤고
119 아저씨는 큰 병원까지 갈 수 없다며 가는 길 가까운 응급실로 방향을 틀었다
그곳에서 심폐소생술과 응급 처치를 했다
응급 처치 후 의사 선생님께서는 빨리 아이를 데리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셨다
큰 딸은 동생을 살려야 한다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어린 동생의 두 손을 꼭 잡고 큰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연락을 전해 받을 때만 해도 아이가 상처만 조금 났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4살 된 아이가 앞머리를 다쳤다
어린아이의 앞 쪽 머리와 이마에 세로 20cm, 가로 18cm가 깨져버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날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나왔던 많은 아파트 주민들과 아이들은 사고가 나는 것을 보고 다 죽은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고는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나는 택시를 타고 기사님께 사정을 이야기를 해서
갓길로 비상등을 켜고 달렸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휴가 차량으로 채워져 있었고 날씨는 더웠다
가는 도중 내내 나의 머릿속은 하얘졌다고 해야 하나? 그냥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내가 병원에 막 도착했을 때는 아이의 긴 머리를 밀고 있었다
잠시 후 밀린 머리카락 위로 흰 붕대가 감긴 채 수술실로 옮겨졌다
마취가 잘되지 않는 바람에 수술실 앞에 주저앉아 있던 나의 귀에 아이 울음소리가 문 틈새로 새어 나왔다 내 가슴은 가시가 찔러대는 통증을 견디며 문을 부여잡고 앉아 있어야 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마치 처음 나의 뱃속에서
태어날 때처럼 강렬한 소리로 반드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나에게 전해 주고 있었다
온몸이 장미 가시덩굴 안에 쌓여 있는 듯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빠에게 버림받은 아이
이 아이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내 목숨을 걸고 낳았던 아이다
이렇게 내 곁을 떠나보낼 수는 없다
나 역시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부터 부처님 신이라는 신은 다 소환을 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밤 1시가 될 무렵 수술이 끝났고 아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머리를 붕대로 감은 채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천사와 같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오늘과 내일이 고비라고 하셨다 수술은 잘 됐는데 폐에 가스가 차서 숨을 못 쉴 수도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머리가 하얀색이 되어있었고 의사 선생님께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머리 뒤쪽이 아니라 머리 앞부분을 다쳤다는 것이다
모든 중요한 부분은 머리 뒤쪽에 있다며,
식물인간이나 기억상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다만 아이가 어리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중환자실에서 아이를 만났을 때 만질 수가 없었다
내가 만지기만 하면 아이가 바스락 재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았다 숨이 막혀 왔다
그 시간의 고통스러움을 무엇으로 표현할지...
큰 딸과 나는 손을 꼭 잡고 오늘 밤 이 아이를 저승사자로부터 지켜내야 했다
그렇게 긴 하루가 가고 있었다
어린아이에게 큰 사고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에 다른 많은 중환자 분들과 나의 아이 옆에서 죽고 사는 인생을 한꺼번에 다 보아야 했다
나는 그렇게 큰 딸과 교대를 하면서 중환자 실에서 보내야 했다
중환자 실은 일반인들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엄마를 계속 찾으며 울어대는 바람에 내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옆에 계시는 다른 환자분들께 폐를 덜 끼칠 수 있었다
중환자실은 상상 속의 병실이었다
분명 옆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아침이면 사라지고 안 계셨다
금방 새로 들어오셨는데 저녁이면 또 사라져 보이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중환자실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학습이 된 학교였고 참고 견디는 삶의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준 장소였다
나 역시 남자로부터 두들겨 맞을 때마다 얼마나 많이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갈까라고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집을 나가 살면서 아이들 걱정과 보고 싶음에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아이들과 살면서 고통받는 삶이 더 나았다
힘들 때마다 다쳤던 어린아이의 천사 같았던 모습과 중환자실에서 겪었던 슬픈 사연들을 떠올리며 참고 살았다
그렇게 중환자 병동은 삶과 죽음이 공존해 있는 공간이었다
아이가 의식을 조금씩 찾아갔다 그리고 10층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아이가 머리를 다쳤기 때문에 소아과 병동이 아니라 신경과 병동에 할머니들과 함께 병동을 사용하여야 했다
나는 아이 옆에서 잠을 자고 오후에는 학원을 나갔다
큰 딸이 선생님께 이야기해서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아이 곁을 지키고 밤에는 남동생을 지켰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이야말로 하나님이나 부처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병원 생활이 한 달이 넘자 나도 큰 딸도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할머니들과 병실을 사용하다 보니 아이가 보지 말아야 할 일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문제들 그리고 기억력이 없으신 할머니들, 목을 다쳐서 오신 분, 피를 새로 투석해야 하시는 분들로 병실 안은 늘 복잡했고 조용한 날이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할머니, 간호사,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병원 생활에 적응해 주었다
다친 곳을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새로 붕대를 감을 때마다 소리 내어 울었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특이한 것은 아이가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싫어했다
하루는 지하로 MRI 검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아이가 계단으로 가자고 하는 바람에 업고 10층에서 지하까지 내려갔다
검사를 다 하고 다시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데
고개 숙인 내 얼굴에서 땀과 눈물과 콧물이 섞여 흘러내렸다
아이한테 우는 것을 들킬까 봐 여름이라 땀이 많이 난다고 했다
아이를 업고 계단을 오르는 것은 정말 숨이 차고 힘이 들었다
그래도 아이가 내 등에 업혀 있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