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칼국수

이마의 흉터(3)

by 무궁화

아이가 다친 다음 날 경기도에서 남자가 내려왔다
얼굴에는 여전히 폭군의 형상을 한 채로 더러운 성격은 그대로였다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말도 없이 나가고 없었다 사람이라면 그동안 최소한의 안부를 물어보는 게 도리일 텐데 남자는 나에 대한 배려나 미안함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나 혼자 무서웠을 밤을, 병원에서 홀로 아이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던 밤, 내 마음을 손톱만큼이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역시 욕심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더 잘하면 관계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남자는 기본적으로 소양이라는 게 부족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남자는 더 고개를 쳐들었다
조금만 더 다정하고 친절한 말투 부드러운 표정과 친근한 태도 따뜻한 마음을 갖추었다면 남자도 인생의 삶이 충분히 행복했을 텐데...
아직도 무엇을 잘못하고 사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듯했다
남자는 나를 보자마자 더러운 인상으로 화풀이할 상대를 찾는 듯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남자를 피했다 그리고
아이를 보고 나간 후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
나와 아이만큼 아프고 힘이 들었을까?
그 남자는 그날 밤 찜질방에 가서 잠을 잤다고 했다
집에는 아직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집에 갔으리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병원으로 온 남자는 나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남자가 없을 때는 아이와 학원 공부에만 신경을 쓰면 됐는데 이 남자까지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다시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와 토할 듯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걸까?
내 고통을 말하지 않아도 신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셨다 나 대신 남자에게 벌을 내리셨다
아마도 고통을 느껴 보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그 남자는 벌에 쏘였던 것이다
남자는 벌 알레르기가 심했다
온몸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 할 만큼 온몸을 긁어대었다
가슴 답답함과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참 신기한데 나는 그날 밤 이상하게도 편안하게 잠을 잤고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 남자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었다 그날도 역시 죽으면 좋겠다고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날 괴롭혔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벌 알레르기라는 병명을 찾아내지 못 한 듯했다
다들 검사만 해보고는 크게 이상 증세가 없다는 것이었다
얼굴과 몸에 일어난 열과 간지러움은 어느 정도 괜찮아진 듯 보였는데 음식을 여전히 못 삼켰다
괜히 말을 걸면 나에게 화풀이를 한 것 같아
되도록이면 피해 다녔다
오직 아이를 옆에서 아이가 일어나기만을 기도했다
아이는 수술 다음 날 신기하게도 늦게 깨어났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신기하다고 하셨다
삼신할머니께서 너무 어린 아이라 지켜주셨다고 믿었다 남자는 아이보다는 자기 몸에 대한 염려가 훨씬 커 보였다
아이가 정신이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나는 조금 더 안정이 되었고 잠을 자지 못했던 피곤함이 몰려왔다
간호사 선생님께 급한 일 있으면 불러 달라고 하고 밖에 의자에서 그대로 쓰러져 잠을 잤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발을 세게 찼다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그 남자였다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나 보고 어쩌란 건지 나도 답답했다
그리고 다시 화성 큰 병원으로 가보아야겠다고 가버렸다 가고 나니까 한결 마음도 몸도 가벼워졌다
그런데 일주일 후 다시 남자가 내려왔다
나는 그래도 아빠니까 아이를 보러 내려왔으리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여전히 벌에 쏘인 날로부터 계속 통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도 아무런 증상이 없다는 말뿐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 듯했다
아들이 5살 때 친정집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마당에 벌들이 많이 날아다녔다
지리산 쪽이다 보니까 벌을 키우시는 분들이 많으셨다
아들은 벌을 보더니 기겁했다
대문 앞에서 무섭다고 몇 시간을 울고 서 있었다
사람이 너무 별나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 맞았다
아들은 그렇게 버티다가 벌에게 이마를 쏘이고 말았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때 마침 어머님께서 약을 주셨다 동네 분들이 양봉을 많이 하시다 보니까 비상약이 있어야 하신다며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주셨다 퉁퉁 부여 오르던 이마는 금세 아무렇지 않게 되었고 아들도 잘 놀았다 그러고 보니까 아빠와 아들이 벌 알레르기를 같이 가지고 있었다 둘 다 배려가 없다 보니 벌이라도 나서서 벌을 주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 어머니께서 아이들 키우다 보면 꼭 필요한 비상약이라며 주셨던 약이 생각났다
약을 줄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좀 더 고생하라고 두고 싶었다
한 편으로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참 이상했다
남자는 너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따뜻한 다독임과 배려 염려 이런 말 한마디면 좋겠다 그러나 남자는 그런 말은커녕 나를 죽일 듯이 괴롭혔다
약을 건네주었다 처음에는 큰 병원에서 주는 약도 들지 않았는데 시골 약방에서 지은 약이 무슨 효능이 있냐며 믿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려고 했다
마음대로 하라며 그냥 두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먹었나 보다
근데 웬걸 그 약은 참으로 신기했다
한 알을 먹었다고 하는데 그대로 가슴 답답함과 목구멍 속으로 음식을 삼킬 수 없는 고통이 싹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끝까지 약을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의 어머니께서는 살아서 나 돌아가셔서 나
막내딸을 위해서 염려와 걱정뿐이시다
어머니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데...
나쁜 남자는 몸이 다 나았다며 아이들 반지 판 돈을 들고 바로 화성으로 가버렸다
학원 생활을 너무 많이 빼먹는 바람에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어 그만두고 과외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한테 더 집중을 할 수 있었다 과외는 주로 밤에 수업을 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생들도 내가 눈이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수업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지금 살고 있는 화왕산 골짜기 계곡 자락으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 나의 아이는 그렇게 큰 상처를 가지고 대학생이 되었다 오늘도 이마에 있는 큰 상처를 훈장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낸다
그러나 20살의 아이는 겉으로 표현만 안 하는 것뿐이지 여전히 이마의 큰 흉터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마의 흉터를 가리기 위해 답답한 앞머리를 눈까지 길러서 감추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아직도 많이 아파하고 있는 듯 더 애처롭기만 하다
여전히 나는 잘 버텨내고 있다
그냥 버텨 보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때 그 어렸던 아이로부터 버텨내는 것을 배웠고 참아 내는 것을 배웠다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위로와 행복을 주고 있었다 휴식과 평화 복잡한 나의 삶에 위로와 다독임을 주는 아이 그때 그 어린아이로부터 더 단단해지고 더 성숙해지는 삶을 살고 있다
사랑은 받는 것도 미안했지만 아이에 대한 미안함도 내 나름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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