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칼국수

이마 위에 총을 겨누다

by 무궁화

어느 해 12월에 마지막 아침의 날이었다
전날 회사 송년회가 있었다며 남자는 만취해서 집에 들어왔다
바로 소파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입덧으로 인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물만 마셔도 토했지만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배어 나오는 반찬 냄새와 설거지 냄새를 유독 힘들어했다 입덧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연속적으로 토해야만 했다


토해내고 나서 남는 속 쓰림과 같은 알 수 없는 구역질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입덧으로 10kg이 빠져있던 나는 걷거나 한 번 일어나는 것조차 어지러워서 힘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은 엉망이 되어있었고 싱크대 안은 설거짓거리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날 오후 잠에서 깨어난 남자가 부엌 싱크대 쪽으로 가더니 설거짓거리를 보고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남자는 싱크대 안으로 손을 담그더니 갑자기 그릇들을 나의 내쪽으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이마와 귓불에 정통으로 맞았다

'으악!'

소리를 지르며 배를 감싸 안았다
남자는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빨간 압력 밥솥을 머리 높이만큼 치켜들더니 거실 TV 쪽으로 던졌다
TV 화면은 반쪽으로 갈라졌고 화면은 반은 보이고 반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밥솥 안에 오래된 밥이 거실 쪽에 홀로 떨어져 있고 까만 추가 밥 옆에 뒹굴고 있었다
잠시 후 젓가락으로 식탁 위 유리판을 꽂아 내렸다
유리는 쩍 쩍 소리를 내면서 금이 갔다
남자는 화가 안 풀렸는지 나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배만 감싸고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옆에 있는 화장대 거울을 주먹으로 쳤다
유리 조각이 눈빛처럼 빛나며 방구석구석 뿌리며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집안은 유리 조각으로 채워졌다
나는 몸이 얼어버려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그날 이후 나는 유리로 된 그릇을 사용하지 않았다
화가 나 있는 남자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하려고 하면 더 큰 화를 내는 성미인지라 그냥 조용히 견뎌야만 했다
우습게도 그 순간에 나는 오렌지 반쪽이 생각났다
한쪽만 입안에 넣으면 힘을 낼 수 있을 듯했다
비스킷 한 조각과 상큼한 오렌지를 함께 먹는다면...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입덧이란 알 수 없는 신비한 것이었다
유치원생이었던 아들은 누나 방 옷장에 숨죽여 있었다
남자는 겁에 질려있는 아들을 막무가내로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내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자가 던진 유리그릇에 의해 내 귓불에서 검은 핏물이 흘러내렸던 것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대로 유리조각 파편들 위에 박혀서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끌려나가다시피 한 아들을 찾아야만 했다
남자에게 전화를 했지만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순간

인터폰이 울렸다
경비실 아저씨였다
지하 주차장에 사고가 났다며 아들이 다쳤다는 것이다
숨이 막혀왔다
왜? 갑자기 사고란 말인가?
어떻게 지하까지 내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내려갔을 때 아들은 의식이 없었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는 망가져있고 앞 유리부터 운전석까지 왕창 망가져 있었다
지하 주차장 큰 건물 기둥을 들이박았다는 것이다
남자는 다쳐서 의식이 없는 건지 술에 취해서 없는 건지 운전대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는 경비 아저씨와 1층 할아버지, 주민분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그분들께 남자를 맡기고 119 구급차에 아들을 태우고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다
내 속에서는 메슥거림이 자꾸만 올라와서 손수건으로 입을 막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어지러워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어떻게 어린 아들을 데리고 죽을 생각이라도 했단 말인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아들이 깨어나기를 바랐다
남자는 술만 마시면 물건을 던져버렸고 나는 그런 남자를 죽이고 싶어 할 만큼 싫어했다
한참 후 아들을 진료하신 선생님께서 큰 상처는 없다고 하시면서 하룻밤 입원을 해서 지켜보자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병원 소독 냄새가 자꾸만 헛구역질을 나게 했다
어린 아들이 아빠 옆에 앉아서 사고를 당해야 했던 그 무섭고 두려웠을 것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집 주변에 살고 있는 조카에게 연락을 해서 병원으로 와달라고 하고 아들을 부탁했다
나는 남자에 대한 분노를 삼키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남자는 큰 대자로 세상 편안하게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유리조각에 박힌 내 마음만큼이나 이 남자에게 유리가 박혀 있기를 바랐다
내 신경이 마비되고 내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순간! 내 이마에 총을 겨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유리조각들이 총알이 되어 폭탄처럼 분출되어 쏟아졌다
파편들이 수의처럼 남자의 배 위를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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