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칼국수

텐트와 태풍

by 무궁화

텐트가 날아갔다
강력한 태풍에 의해서
인생의 사계절에도 가을이 있더라
노란 은행나무 잎들의 터널 속을 걸어가야 하듯이
푸른 잎새가 추락의 아픔을 모르듯이 인생에 터널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한다는 알림 문자가 연신 들어오는 그런 날이었다
이사를 하고 한 달 뒤쯤 9월에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 오후였다
남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앞마당 자갈들을 치워내더니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 태풍이 온다는데...
엥! 웬 텐트... '

이상한 행동을 보고만 있었다
태풍이 온다는 알림 문자는 계속 들어왔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다만 바람만 불고 있었다
남자는 아침부터 엄청난 일을 하듯 바빠 보였다
남자는 텐트를 치고 있었다
힘겹게 텐트를 치고 난 후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부르더니 자랑을 하더라

그런데

우와!

텐트 안은 장관이었다
스티로폼 패널을 바닥에 깔고 전기담요를 그 위에 깔고 이불까지 깔아 두었다
또한 티브이와 선풍기까지 설치했다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부푼 듯이 텐트 안으로 물건들을 옮겨두었더라

집을 새로 지어 이사를 왔지만 이제 한 달이 지나다 보니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집안과 밖은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과 버려야 하는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새로 지은 집에 이것저것 덧되는 바람에 헌 집이 되어버렸고 내가 꿈꾸던 그림 같은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헝겊을 데어 꿰맨 옷 마냥 덧되고 겹치는 바람에 집은 오래되어 낡고 반은 중고 냄새가 풍기는 그런 집이었다

헌 집 같은 공간에 커다란 텐트까지 먹구름 아래에서 텐트는 나의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듯이 동그랗게 펼쳐져 있었다
불안한 마음은, 익숙한 불안은 꼭 날씨만큼이나 적중했다
남자는 텐트 안에서 꼼짝도 안 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산중에 어둠은 일찍 내려앉기 시작했다
밤 11시가 될 무렵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기이한 소리를 내면서 모든 것을 먹어치 울듯한 강력한 몸짓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비는 화살같이 내리꽂으며 빗살 무늬를 그리며 바람 따라 요동쳤다
산중의 바람은 도시에서 느끼는 그런 바람의 크기가 아니었다
처음 겪어보는 산중의 태풍은 말처럼 커다란 바람이었다
갑자기 마당에 설치된 텐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의 물결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바람과 비는 텐트 안의 물건들 마저 흔적 없이 데리고 떠나갔다
바람과 비는 물건을 챙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도 않았지만 사람이 서 있을 만한 힘도 주지 않았다

남자의 얼굴에는 날씨처럼 먹구름을 가득 안고 태풍 같은 무서움으로 자고 있던 아들과 딸을 깨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잠옷만 입고 비를 맞으며 덜덜 떨고 있었다
베란다 데크 쪽에 덧대어 붙어진 것들이 바람에 뜯겨 나가고 있었다
미완성이었던 집 지붕에도 덧댄 조각들 역시 바람 속에 가냘픈 연처럼 휘날려고 날아가고 있었다
남자는 고함을 치면서 아이들에게 날아가는 물건들을 잡으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바람의 세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 눈에도 처음 겪는 산중의 태풍은 바라보기만 해도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다
그 한밤중에 아이들은 비와 바람을 맞으며 남자의 고함 소리에 떨고 있었다
그날 밤 비를 맞고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는 독감에 걸려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바람에 불 때는 그냥 두어야 한다
태풍과 맞서 싸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사람이 어찌 재해에 맞서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남자의 바보 같은 행동에 나는 크게 웃었다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이상하게 뭔가 희열감이 돋아났다
남자의 텐트가 날아가고 망가진 물건들 그리고 남자가 물건들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한 모습을 보고 고소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음날 산중의 큰 비는 큰 냇가를 순식간에 차올라 흐르고 있었다
아침에 비는 멈추었지만 찬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다
황토색은 물이 냇가를 넘쳐 채우는 모습은 누런 용이 굽이쳐 하늘 위로 올라가려는 몸부림처럼 길게 누워 구르고 있었다
우거진 진녹색 갈대숲은 빗질이 곱게 되어 쓸려가 버렸다
자연의 힘은 두려움을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불어난 냇물도 처음 보았고,
지붕에 덧댄 천막들이 날아가는 것도 처음 보았고,
마당에 설치해 두었던 파라솔이 마치 우산처럼 아주 먼 곳으로 날아가는 것도 처음 보았고,
재해의 무서움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을 때의 그 떨리는 마음도 처음이었고,
땅이 뒤흔들리는 듯한 바람 소리도 처음이었고, 우뚝 서 있던 뒷산이 통째로 흔들리는 소리도 처음 들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와 아이들은 멀리 날아간 물건들을 주워야 했다
얼굴이 검었다, 붉었다 변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내는 남자 옆에서 하루 종일 시키는 일을 해야만 했다
남자는 귀신이 붙은듯했다
한두 명의 귀신들이 아니라 수백 명의 귀신들이 붙었으리라 아마도 집 없는 귀신들이 붙어서 태풍 온다는 날 텐트를 치게 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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