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의 11월은 추웠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그때 즈음 남자의 사촌 동생이 자주 집에 찾아왔다
두 사람 다 백수였다
그날도 아침부터 집에 왔다
오전부터 막걸리를 마셔 대더니 얼굴에는 이미 붉은 취기로 가득했다
막걸리 안주로 부추전을 얇게 구워오라는 것이었다
희미한 왼쪽 눈 부추전을 얇게 구울 수 있는 일은 힘든 숙제였다
최선을 다해 구웠던 부추전은 두껍게 구워졌다
막걸리에 취해 버린 남자는 두꺼운 부추전을 마당으로 내동댕이 처 버렸다
붉은 덩어리가 목 안에서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내팽개친 부추전을 손으로 긁어모으고 있는데 갑자기 사촌 동생과 언쟁이 시작되었다
만나면 있는 일이라서 관심 밖의 일이라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막걸리를 마시던 남자의 옆에는 아직 덜 마른 호두가 채반에 펼쳐져 있었다
사촌 동생과 막걸리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두 사람 다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러다가 옆에 있던 호두를 집어던지더니 마당에 떨어진 호두 알을 발로 깨 뭉개버렸다
아니.... 왜?
술에 취한 남자는 사촌 동생과 언쟁 중에 호두를 던져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나는 화가 나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막무가내로 덤벼들었다
그리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의 어머니께서 막내딸 적적할 때 하나씩 꺼내 먹으라며 아직 덜 말려진 호두를 추석날 내 짐 꾸러미 안에 넣어주셨던 호두였다
무릎이 아프셔서 수술을 받으시고 겨우 지탱하고 계시는 어머니 그럼에도 농사일을 늦출 수 없다 시며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한 톨의 밤과 한 개의 호두를 주우셨던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내 마음속에 해와 달과 같은 분이셨다
우주에 생명은 사랑으로 빚어서 탄생시키신 분
나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께서 호두를 따고 씻어서 덜 마른 호두를 준다면서 오히려 미안해하며 집에 가져가서 햇빛에 다시 말려야 한다고 내 보자기에 넣어주셨던 호두
나에게는 천금 같은 보배였고 보약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만 나는 온몸으로 덤벼들다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두들겨 맞아야 했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서 뺨을 맞고 머리를 다 뽑혀 나가 헝클어지고 배와 등을 밟혔다, 호두처럼
산산이 뭉개져 버렸다
벗겨진 신발 한 짝을 뒤로하고 겉옷도 없이 막무가내로 집을 뛰쳐나왔다
한 마디로 더럽고 치사해서 살 수가 없었다
두 번 다시는 보지 말자며 마구마구 소리를 지른 다음 나는 들판을 향해 그냥 뛰었다
11월의 밤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윙윙 귀신이 곡하는 소리를 내면서 찬바람이 불어 대기 시작했다
어둠은 빨리 찾아왔고 갈 곳은 없었다
나는 지쳐 있었다
그냥 경사진 논두렁에 몸을 의지한 채 쓰러져 누웠다
어디서 올빼미 울음소리 마냥 슬픈 소리로 마치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어느 이름 없는 병사의 흐느낌 같은 짐승의 소리가 날 소름 돋게 했다
논두렁에는 메마르고 눈물 없는 풀들과 갈댓잎만 남아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지만 추위가 내 몸을 파고들었다
짚 볏단을 흰 비닐로 덮여둔 것이 마치 달콤한 마시멜로처럼 달짝지근한 향에 내 허기짐을 알리고 있었다
밤은 깊어지고 추위는 어둠이 깔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배고픔과 추위로 나는 이제 얼어 죽는 일만 남아있었다
저 멀리 산등성 끝자락에서 빛 하나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선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 정리를 했다
찢어진 옷, 한쪽만 신은 운동화, 비에 젖고 흙에 젖어버린 나의 몸 상태로 달려가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는 빛이었다
그냥 얼어 죽는 것이 나의 운명인 듯 받아들여야만 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추위는 나를 아프게 했고 감각은 무뎌갔다
'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나는 오늘 죽고 없는 사람이다 '
그렇게 생각을 하며 불빛을 따라가 노크를 했다
작은 체구의 여스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문을 열어주셨다
담요 한 장을 가져오시며 내 어깨를 감싸주셨는데 따뜻했다
부처님의 선물이었다
따뜻한 보이차를 내어주셨다
서글픈 내 삶이 보이차 안에서 녹아내렸다
인생이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보다 더 치열한 삶 위에 서야만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밤이 새도록 부처님 안에서 참고 견뎌내야 하는 법을 배우고, 따뜻한 사랑을 배우고, 나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는 믿음 배우며 두들겨 맞은 상처 위에 부처님의 향이 스르륵 덮여 연고처럼 스며들었다
그렇게 그렇게 그날 밤은 울다가 웃다가 부처님 안에서 잠을 청했다
그날 밤 내 가슴 안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