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지만 나에게 좋은 점은 없었다
남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집안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물건을 사서 마당에 쌓아두고 새 집을 헌 집으로 바꾸었다
집 전체를 스티로폼 판넬로 덮어버렸다
딸과 아들 방 거실은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여름은 더위에 지쳐야 했고 겨울은 추위에 지쳐야 했다
밝은 세상도 어두운 세상도 내가 만들어가는 삶이었지만 나에게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사는 일과 하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지만 남자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남자의 지시에 나의 하루는 결정되었고 하루 종일 망치로 못을 박고 패널을 잘라 창고를 만드는 남자를 따라다니는 것은 고역이었다
새 옷에 헌 천을 꿰매듯이 새 집은 이상한 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남자는 나의 모든 것들에 화를 냈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나는 다리 밑에 달려있는 개의 신세 마냥 헐떡 거리며 남자 옆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밖에는 온통 봄이 와서 시끄러웠는데 나는 겨울 안에 머물고 있었다
가난도 가꾸어야 한다지만 주어진 가난함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카페에 손님은 오지 않았다
마당은 정돈되어 있지 않았고 판넬들은 쌓여 갔으며 날마다 술에 취한 채 망치질과 톱질을 해서 오는 손님들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카페인 줄 알고 다시 나가는 분들도 있었다
술에 취한 남자의 얼굴은 항상 붉어 있었고 인상은 험악했다
남자와 나는 말을 잃어가고 있었고 그만큼 멍이 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농로길 양쪽에 심어진 노란 금계국 꽃은 뿌리째 호미로 캐서 마당에 자갈을 걷어내고 심기 시작했다
코스모스, 백일홍, 해바라기, 민들레, 양귀비, 봉숭아 꽃 씨앗도 뿌렸다
육체를 움직여서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여겼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자갈 밭이던 마당은 꽃들로 채워져 나갔고 노란 금계국 꽃이 가장 먼저 피어서 얼어 있던 내 마음은 조금씩 녹여주고 있었다
연두색 꽃대에서 진한 녹색 꽃대로 바뀌면서 밝은 노란 꽃은 한층 더 밝은 색으로 내 마음에 웃음을 펼쳐 주었다
금계국 꽃은 예뻤다
자갈밭이었던 대지를 노랗게 물들여주는 신비함에 놀랬다
뿌렸던 꽃씨들에서도 수북이 꽃모종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올랐고 비가 내리는 날은 마당 곳곳에 옮겨 심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나쁜 인간과 함께하는 공간은 나 역시 나쁜 인간화되어 간다
더 이상 남자의 나쁜 영향이 미치지 못하도록 내가 더 이상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를 둘러싼 모든 곳에 꽃을 심어서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했다
나에게 대지 위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어머니였고
나의 영양분이 태어나는 우주의 한 공간이었기에
흙 위에서 꽃을 피워내는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흙냄새는 멀리했던 이 땅의 자연을 다시 나의 친구가 되게 해 주었고 날마다 조금씩 새로운 꽃들에 의해서 눈을 떠가고 있었다
긍정의 지평에서 본 나의 꽃들은 보살의 자비만큼 따사롭고 평화로웠다
나는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검소하게 자연의 위치에 따라 살고자 노력했다
그 누구의 간섭에 받지 않는 삶, 때로는 높이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깊이 내려앉기도 하면서 내 삶의 리듬을 느끼며 자연에 의지한 채 살고자 했다
나는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최대로 살아야 한다는 선인들의 말씀처럼 놀랍도록 아름답고 신비한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나는 나무가 되고자 했다
봄이 오면 연둣빛 싹을 피우고 꽃을 피우는,
여름에는 시원한 가지로 그늘을 만들어주는,
가을에는 예쁜 단풍을 만들어 봄의 꽃을 다시 피어주는,
겨울에는 빈 가지에서 모든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그런 나무가 되고자 했다
아! 그런데 이럴 수가...
왜! 도대체 왜!
아침에 일어나서 본 나의 꽃들은 뿌리째로 뽑혀서 구겨지고 밟히고 시들어 가고 있었다
마치 날 대신에 죽어가고 시들어 가는 것처럼
가엽게 아침 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에 눈물처럼 머금고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남자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낫을 들고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이 꽃들과 함께 죽을 각오로 덤벼들었다
남자는 오히려 더 크게 화를 냈고 번식력이 강해서 다른 나무들한테 해를 끼쳐 뽑아냈다는 것이었다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모든 꽃들은 한 포기도 남겨두지 않은 채 뽑혀서 길가 풀숲으로 내동댕이 되어 버려져 있었다
우리는 격한 몸싸움을 했고 나는 실컷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마시고 들고 있던 낫으로 손목을 그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금계국 꽃과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