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칼국수

팽나무

by 무궁화

남자는 빛이 쌓여갔다

카드 빛과 대출 그리고 이자들

남자는 전화가 자주 왔고 이야기는 주로 대출에 관한 것이었다

혼자 막걸리를 마셔가며 열을 올렸지만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4월에 나무를 옮기고 심는 조경 일을 시작했다

하루 12만 원의 임금을 받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을 했다

남자가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빛이 많았고 빛 독촉이 심했기 때문이다

처음 일을 하러 간 곳은 어느 100년의 역사를 가진 사립 고등학교였는데 학생들의 쉼터를 만드는 일이었다

100년이 넘는 학교였기에 큰 나무들과 푸른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필요 없는 나무들을 뽑아서 없애고 새로운 꽃과 나무를 심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불두화나무를 산책로에 줄지어 심고 밑에는 영산홍과 철쭉을 심었다

산책로에는 맷돌 대신 푹신한 야자수 잎으로 만든 매트를 깔았다

학교에 이사장님은 98세 셨는데 귀가 좀 안 들리는 분이었다

대단한 분 같아 보였는데 자기 말만 하시는 고집불통이신 이사장님이셨다

학교에는 100년이 넘게 살아온 팽나무가 있었는데 이사장님께서 무조건 뽑아서 없애 달라고 하셨다

함께 일을 하시던 분들께서 나무는 학교의 역사라며 말렸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그 팽나무는 나의 카페 입구에 옮겨 심어져 있다

아주 우람한 자태로 멋지게 가지를 늘어뜨려서 아침마다 산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며 노래로 나와 인사를 나눈다

나는 팽나무 할머니라고 이름을 붙여서 날마다 포근하게 할머니께 안기기도 하고 힘들 때마다 날 토닥여 주기도 하는 행복을 주는 그런 나무가 되었다

남자는 한 달 내도록 몸에 파스를 붙이며 손가락에 쥐가 나면서 나무를 옮기고 심는 일을 하면서 400여 만원의 임금을 받았다

그런데 그 돈은 결국 한 푼도 남자에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 돈은 팽나무와 바꾸었던 것이다

은행에서의 빛 독촉은 심해졌고 대신 팽나무는 자리를 잘 잡고 지금도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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