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칼국수

가우라 꽃 (나비바늘꽃)

by 무궁화

여름은 눅눅했다
집 주변이 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집 옆에는 내 키 보다 높이 자란 갈대숲이 우거져 한 여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밤낮으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면 지난 세월의 향기가 묻어 나의 이야기는 옛날이 되었다
산자락과 들판에서 들꽃의 아름다움에 날마다 감동을 받던 날 군청에서 나온 분들이 제초작업을 하고 있었다
시원한 냉커피를 가져다 드렸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었냐면서 일을 마치고 팥빙수를 주문했다
다음날도 일을 마치고 왔는데 젊어 보이는데 나이가 드셨던 분께서 가우라 꽃(나비 바늘꽃)이 심어진 두 개의 작은 화분을 나에게 주셨다
나는 그때 넓은 챙이 있는 밀짚모자를 쓰고 검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붉은색 장화를 신고 있었다
누가 봐도 농촌에서 일하는 농부의 차림새였다
열심히 사는 게 보기 좋았다면서 키우면 좋은 일들이 생긴다며 기적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다시 꽃을 심기 시작했다
어려움이 겹칠수록 꽃과 나무에 관해 더 열심히 공부했다
희미한 왼쪽 눈에 의지해서 왼쪽 손으로 최대한 눈 가까에 대고 책을 보고 중요한 부분은 적고 암기해 나아갔다
공부는 어려웠지만 나를 좌절시키지는 못했고
다시 일어서게 했다

어느 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과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종과 나비' 책을 만나게 되면서 버리고 채우는 삶의 지혜를 알게 되었고 죽음의 삶에서 불끈불끈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허락되는 한 책을 읽고 쓰고 암기했다
한 권의 책이 나의 것이 되기까지는 50번을 보고 듣고 읽어야만 했다
기억력, 집중력, 이해력은 언제나 부족했고 활자화된 글들은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에게 책은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읽어야만 했다
밖에서 일을 할 때는 듣기를 무한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밤에는 오른쪽 귀에서 소리가 났으므로 듣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럴 때는 쉬운 것들을 다시 보면서 반복된 학습을 해나갔다
알고 싶은 나무는 작은 묘목을 구입해서 심고 이름표를 달아주면서 나무의 사계를 공부해 나아갔다
나의 정원은 다시 꽃이 피기 시작했고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겉만 보고서는 어떤 세월 속에서 얼마 만의 고통을 겪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무 역시 겉만 보고 나무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씀과 쓴 몸짓으로 얼마나 많은 추위와 더위, 눈, 비, 바람을 맞고 상처를 추슬러 가면서 한 자리에 서 있었을까
나무 공부를 하면서 나무의 대단한 철학을 배웠고
나무를 대할 때마다 생명의 신비함에 감사를 느꼈다

나는 지금 사람보다 나무와 반려견들에서 더 애정을 키워가고 있다
내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가우라 꽃이 군락을 이루며 피워주고 무궁화나무가 내 삶을 곁에서 함께하고 반려견들이 나와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풀벌레 소리도 정답고 냇가로 내려와 울부짖는 고라니 소리도 애달프다
식물도 귀와 입이 있는 듯 나의 말을 들어주고 나에게도 말을 건네주며 서로 정답기가 그지없다
계산되어 있는 삶은 없는듯하다
그때그때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살아가야 하고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내 삶에서 무궁화 꽃을 만나기까지는 수없이 반복된 삶의 아픔들이 만들어낸 선물이 아닐까

나에게 가우라 꽃을 선물해 주셨던 분께서 하얀 꽃잎 속에 붉은 단심이 있는 백단심과 붉은 꽃잎 속에 붉은 단심이 있는 홍단심 두 그루를 선물로 주셨다
백단심과 홍단심의 두 그루 무궁화 꽃은 나에게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빛이고 희망이 되었다
나는 두 무궁화나무로부터 시작해 엄청난 양의 무궁화나무를 심고 가꾸게 되었다
국내 유일하게 300 품종의 무궁화를 심고 공부하면서 무궁화나무의 사계를 함께 겪고 연구해 나아가면서 무궁화 꽃의 위대함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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