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지었다
나무들은 얼어서 다 죽었다
죽은 나무 대신 수박, 참외, 고구마, 땅콩, 고추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밭 둘레에는 옥수수를 심었다
남자는 밤낮으로 열심히 심고 가꾸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농사는 그랬다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처음 5월~6월에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면서 작물들은 아주 건강하게 쑥쑥 잘 자라주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가롭고 평화로운 전원생활의 절정이다
카페에 오시는 손님들도 농사를 잘 지었다면서 감탄했다
그러나 7월에 장마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들은 바뀌기 시작했다
고추는 장마 비와 함께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8월에 더위로 인해 병이 들어 땅으로 흔적도 없이 떨어져 죽었다
수박과 참외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이쁘고 탐스럽게 달려있던 수박과 참외는 높은 온도에 견디지 못하고 푹푹 썩어갔다
고구마 역시 줄기는 엄청 싱싱하고 크게 뻗어나갔지만 막상 땅을 파보면 한 알의 알도 없었다
옥수수 역시 키도 튼튼하게 잘 자랐다
그러나 추석이 오기 전에 태풍이 와서 키 큰 옥수수는 거짓말처럼 모두 쓰러져 버렸고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결국 옥수수 역시 한 개도 먹어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남자가 심고 가꾼 농작물에서는 수확한 게 아무것도 없었고 일거리만 더해준 것이 되었다
남자는 다시 가을이 되자 배추와 무를 심었다
이상하게도 배추와 무는 풍년이 되었다
아마도 열심히 공부를 한 것 같다
그 해 12월 나는 쌓여있는 배추와 무를 다 씻고 절여서 200 포기김치와 동김치를 담아야 했다
흰 눈이 쌀가루처럼 뿌옇게 뿌려지는 새벽까지 찬 서리를 보면서 김치를 담아야 했다
나는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절여진 채로 잠을 자야 했다
그리고 김치 냉장고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배추김치와 동김치는 1년 후 모두 땅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