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었다
한 여름 8월에 이사를 왔다
그리고 한 겨울 동안 나무를 심었다
집과 가게를 포함 천여평 남짓한 곳은 텅 빈 들판의 볼품없는 건물 두 채만 있었다
모든 상황이 덥거나 아니면 추웠다
주변이 정리되지 않아서 쓰레기 더미만 쌓여 있었다
티브이나 영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집도 정원도 없었다
남자는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남천과 사철나무를 울타리 용으로 심는다고 했다
나도 남자도 나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전혀 없었다
이사를 오기 전 아파트 생활을 했던 우리로서는 당연했다
남자의 생각대로 나무는 심어졌고 우리는 남자의 지시에 따라 함께 나무를 심어야 했다
이상하게도 남자는 낮에는 자기 볼일에 항상 바빴고 꼭 밤늦게 나무를 심었다
남자는 땅을 파고 아들을 흙을 나르고 딸은 불을 밝히고 나는 물을 주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은 추웠고 나무와 우리는 꽁꽁 얼어가고 있었다
땅을 팔 때마다 돌이 튕겨 나왔다
집 주변 자체가 처음부터 기초 공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축대가 쌓여있지 않았고 옆 땅과의 경계선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사진 곳에서 땅을 파고 미끄러지기를 수없이 반복해 가면서 나무를 심었다
우리 중에 왜 추운 밤에 나무를 심냐고 물어볼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다 심었다고 생각하면 다음날 엄청난 양의 남천과 사철나무가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나는 날마다 물 주는 일을 해야 했다
남자는 인터넷으로 남천과 사철 어린 묘목을 800만 원 치를
구입했다
붉은 남천 잎과 푸른 사철 잎이 겨울바람에 떨고 있는 모습이 나와 아들 딸의 모습처럼 보였다
나무 심는 일은 계속되었고 한 그루의 나무가 제자리 찾기 위해서는 최소 세 번 또는 네 번의 움직임이 있어야 제자리를 찾았다
계속 반복되어 옮겨지는 어린 묘목들도 우리처럼 가엽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천과 사철 나무들이 다 심어지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반송과 과실나무들 감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사과나무, 매실나무, 대추나무 특히 벚나무를 많이 구입해 왔다
우리는 밤마다 나무 심는 일을 겨울동안 해야만 했고 남자는 여전히 나무를 이리저리 반복해서 옮겨 심었다
사람도 이사를 하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듯이 나무 역시 새로 이사한 공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추운 겨울에 심어지고 여러 번의 반복되어 옮겨 심어진 남천과 사철나무는 새 봄이 오기도 전에 한 그루도 남김없이 모두 얼어 죽고 말았다
다행히 봄에 심었던 사과, 매실, 자두, 배, 감, 대추나무는 튼실하게 잘 자라주어 봄에는 이쁜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열매를 맺어 주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남자가 사과, 배, 자두나무 가지를 몸통만 남기고 짧뚝 다 잘라버렸다
봄마다 흰 눈처럼 쌓인 향기가 내 정원에 내려앉았었는데
돌아오는 이번 봄에는 하얀 레이스 같은 자두 꽃도 신부의 웨딩드레스 같은 배 꽃도 해당화를 닮은 미니 꽃사과도 구슬 밥풀떼기 같은 박태기 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죽은 나무의 양만큼이나 남자의 카드 빛은 쌓여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