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 다른 의미
이런 경험 한번쯤 해보셨을 것 같아요.
분명 같은 회의실에서, 같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회의가 끝난 후 팀원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마치 전혀 다른 회의에 참석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고객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했잖아요!"
"네, 맞아요. 그래서 개발 일정을 늘려야 한다고요."
"아니요, 오히려 출시를 앞당겨야 하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답은 우리의 뇌 속에 있습니다.
뇌과학자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선택적 주의'라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것처럼, 뇌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즉시 과거의 경험과 기억들을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장 비슷한 경험을 찾아 그것을 기준으로 현재 상황을 해석하죠.
재미있는 점은, 이 과정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객 중심'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영업팀장의 뇌는 자동으로 '작년에 빠른 출시로 성공했던 그 때'를 떠올립니다. 반면 개발팀장의 뇌는 '버그 때문에 고객들이 불편했던 그 순간'을 기억해내죠.
같은 단어를 듣고도 전혀 다른 해석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경과학자들은 이것을 '경험 의존적 뇌 가소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뇌가 경험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신경 회로를 만들고, 그 회로를 따라 정보를 해석한다는 거죠. 마치 각자 다른 색깔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요.
'평가'라는 단어를 생각해봅시다. 어떤 감정이 떠오르시나요?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기회이고, 다른 이에게는 불편한 심사의 순간일 것입니다.
같은 단어인데도 전혀 다른 감정과 의미를 불러일으키죠. 우리 뇌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온톨로지(Ontology)'가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온톨로지는 단순한 용어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공통된 의미'를 부여하는 체계입니다. 마치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지도를 공유하는 것처럼, 같은 단어를 두고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개념들 사이에 명확한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죠.
실리콘밸리의 데이터 기업 팔란티어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이 '공통된 언어 체계'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러 용의자'라는 개념을 정의할 때를 보겠습니다.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테러 위험이 있는 사람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것.
" 하지만 '위험한 사람'이라는 기준은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FBI 요원은 "수상한 자금 흐름"을, CIA 요원은 "특정 단체와의 접촉"을, 현장 요원은 "이상 행동 패턴"을 중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팔란티어는 이런 다양한 관점들을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테러 용의자는 다음 중 둘 이상의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다: 테러 조직과의 자금 거래 이력, 테러 조직 구성원과의 주기적 접촉, 테러 관련 장소 반복 방문, 폭발물 제조 물질 구매 이력..." 이렇게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면, 각자의 경험이나 판단 기준이 달라도 모든 분석가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비단 기업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소통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성장', '혁신', '변화' 같은 단어들, 우리는 이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과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신입 사원 교육에서 한 관리자가 "우리는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해봅시다. 어떤 신입은 '직급 없이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떠올리고, 다른 신입은 '자유로운 의견 제시'를 생각합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회식 때 순서 없이 앉는 것'을 떠올릴 수도 있죠. 경험이 다르니 '수평적'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도 달라지는 겁니다.
따라서 진정한 소통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이해하고, 그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수평적이라고 했을 때, 어떤 모습을 그리고 계신가요?", "협업이란 말에서 떠오르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런 질문들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해석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타고난 한계이자, 역설적으로 더 나은 소통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통된 의미를 만들어가려 노력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이해가 시작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