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우는 서툰 연습들
누구나 한 번쯤은 거치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
때로는 헤매고, 때로는 발견하는 그 순간들을 기록합니다.
연차를 냈다.
평소라면 누군가와 함께 보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책 한 권을 들고 식물원으로 향했다.
알록달록 물든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강물은 잔잔히 흐르며 빛을 반사해 나를 비춘다.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무릎에 잠시 덮어둔 채,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공원의 풍경이 오늘따라 유독 다르게 다가온다.
'찬란하다.'
문득 스친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종종 편한 행복에 머무르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남자친구와 함께일 때면 일상의 모든 순간이 특별해졌다.
평범한 동네 골목길을 걸어도, 담배 연기 날리는 식당가를 지나도 그저 행복했다.
함께 나누는 대화와 작은 교감들이 내 일상에 새로운 색을 덧칠해주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선물처럼 찾아오는 행복이었다.
특별한 준비나 노력 없이도, 그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만했던 그 기쁨.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서서, 그 순간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감정이 연결되는 것.
그래서 꼭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지 않아도, 그저 그대로도 좋았다.
하지만 그 달콤함이 때로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행복에 길들여지다 보면, 조금은 수고스러운 다른 기쁨들을 놓치기 쉬워진다.
책을 챙겨 나가고, 날씨를 살피고,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는 작은 수고스러움 같은 것들.
그렇게 점점, 혼자서는 행복을 찾는 법을 잊어가는 건 아닐까.
오늘, 이 고요한 순간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잔잔한 물결이 그리는 무늬를, 나뭇잎 사이로 스미는 햇살의 따스함을, 가을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함께일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순간의 아름다움들이다.
마치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감각을 되찾은 것처럼, 내 안의 작은 설렘들이 깨어난다.
삶은 결국 균형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행복에만 길들여지면,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특별한 선물들을 놓치기 쉽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나'는 어쩌면 혼자만의 시간과 타인과의 관계 사이 어딘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분명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들과 웃고 이야기 나눌 때 행복을 느낀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나의 한 부분이다.
다만 이제는 그 행복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어떤 순간에, 어떤 사람과 함께할 때 내가 진정으로 기뻐하는지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퇴근길, 동료 관영(a.k.a snape)님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좋아하는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거기서 실마리가 보일 거예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게임을 좋아한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시작해, 왜 게임에 빠져드는지를 깊이 들여다보니 '즉각적인 피드백'에서 오는 즐거움을 발견했다고. 그래서 지금은 마케팅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다루는 일을 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문득 깨달았다.
'나찾기'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순간에서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나를 발견해가는 여정.
때로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때로는 웃음소리 가득한 대화 속에서 나의 새로운 조각들을 만나는 과정.
"지금 이 순간, 나는 왜 행복한가?"
스네이프의 추천에서 시작된 [나찾기 프로젝트].
사실 좀 짜증나고 머리도 아프다. 의식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때로는 수치스러운 과정을 낯낯이 공유하려고 한다. 나의 팔레트는 점점 더 다채로워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