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원순환
버려진 물건, 폐기물, 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일상적인 물건을 모아 다양한 형태로 조합하고 표현하는 설치를 도왔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전시다. 쓰레기란 이름을 달고 함부로 버려지는 물건들이 미래에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작품이다.
목수는 주춧돌을 먼저 그린 다음 기둥,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지붕부터 그리고 보는 우리와는 정반대였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다. “내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처절한 낭패감을 맛보았다.” 주춧돌도 기둥도 준비하지 않고 다짜고짜 집을 짓겠다고 덤비는 우리의 성급함을 말한다. 고,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 시절에 만난 목수의 이야기를 쓴 『처음처럼』 18. ‘목수의 집 그림’에 나오는 일하는 사람의 그림을 두고 한 말이다.
“발묘조장”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속담으로 치면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다.
『나비고치 이야기』는 한 번은 들어봤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나비가 막 고치를 벗고서 밖으로 나오려고 해서 신기해 들여다보았다. 오랜 시간을 몸부림을 쳐도 나비가 나오지 못하고 작은 구멍 속에서 파닥거리며 사투를 벌였다.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가위로 구멍을 크게 내주었다. 덕분에 나비는 고치에서 나왔다. 어찌 된 일인지 고치에서 나온 나비는 날아오르지 못하고 비실거리더니 바닥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나비는 고치를 벗고 나올 때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을 쳐야 날개 근육이 생긴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도와준다는 일이 오히려 망쳐버리고 만 것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하는 “줄탁동시”와는 반대되는 말이다.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경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통계 자료를 보면 2020년에서 2022년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은 3만 9,453명으로 코로나19 사망자 3만 2,156명보다 7,297명이 더 많았다. 연도 별로 살펴보면 코로나19 사망자는 유행 초기였던 2020년에는 900명, 2021년 4,663명, 오미크론 변이로 전환된 2022년 2만 6,593명으로 늘었다. 2023년 현재까지 3,778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졌다. 이 인원까지 합치면 3만 5,934명이다.
같은 기간 극단적 선택 사망자 수는 2020년 1만 3,195명, 2021년 1만 3,352명, 2022년 1만 2,906명으로 꾸준히 1만 3,000명 내외로 나타났다.
4년 가까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숨진 사람보다 자살한 사람 수가 3,519명 더 많은 것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치료받은 환자는 지난 5년간 90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동시에 치료받은 환자도 55만 명에 달했다. 특히 30대 미만 연령대에서 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년 동안 우울증, 불안장애 진료 인원은 29.6% 증가했다. 20대는 78.7% 증가했으며 10대 63.2%, 30대 59.2% 순이었다.
사회적 불안과 우울감이 젊은 층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고, 과열된 입시와 취업 경쟁 스트레스, 그리고 사회 양극화 심화 등 흔히 말하는 'N포 세대'를 표현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불안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자는 『추수편』에서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렇게 말한다
들보나 기둥은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는 유용하지만,
구멍을 막는 데는 소용이 없다.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는 살쾡이만 못하다.
재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올빼미는 밤에 벼룩을 잡고 털끝까지 헤아릴 수 있지만,
낮에는 눈을 뜨고도 큰 산조차 보지 못한다.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목이 마를 때 물을 줘야 한다
버려진 물건, 폐기물, 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일상적인 물건을 모아 만든 작품을 보며 쓰레기 모음이라 볼 수도 있다. ‘저걸 뭣 하러 보여줘?’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면적인 관점을 통해 "쓸모없음의 쓸모"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건 누구도 다 알기 때문이다.
"쓸모없음의 쓸모"는 “쓸모 있음의 쓸모”와 동의어가 될 수도 있다.
목수가 주춧돌을 먼저 그린 다음 기둥을 그리는 건 국민의 안위가 우선인 사회 즉, 민생을 살피는 말과 같지 않은가? 『나비고치 이야기』는 현장을 세심하게 알고 들여다보라는 뜻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설 수는 없다.
전염병보다 무서운 먹고 사는 문제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고통받는 국민을 위한 실용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