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이야기 속에서 어휘를 알아간다는 것은, 내 안에 있던 어휘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달라지는 어휘만큼 나를 비운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의식적인 경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경계 속의 자의식과 무의식, 관계의 삶이다. 평생 딸을 못마땅해하고, 시기하고, 불평하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후, 어머니의 집에 있던 살구나무의 “살구”를 모두 따서 집안에 들여놓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리베카 솔닛」은 많은 직접적 경험과 간접적 경험을 통해 경계의 영역을 자유자재 책 속으로 읽는 이를 이끈다.
각박한 현대인의 삶에 왜 이야기가 필요한지? 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왜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하는지 말하는 책이다. 설사 이야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해도 삶은 관계라는 틀로 연결되어 있다. 태어남과 죽음,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희생과 돌봄, 이 모든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자, 초 연결체로 연결되어 있다.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서사가 있으므로 희미해졌을 감정이 생생하게 유지된다. 과거에 있었던 일과 거의 관련이 없고 지금과는 더욱더 관련이 없는 감정이 서사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관점이란 말 그대로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으로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양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p53」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욜로족이라는 시대 언어가 청년들을 중심으로 의식을 사로잡은 일이 있다.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하라는 말로 잘못 해석되어 이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이들을 보았다. 그 말을 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물었다. “우리가 없이 내가 있을 수 있냐고? 네가 없이 내가 있을 수 있냐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말을 또 다른 “안경 패러다임”으로 해석한 것이다. 관점이 의미가 된다는 말의 어휘가 퇴색한 것이다.
「무감각이 자아의 경계를 수축시키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그 경계를 확장한다. 남미의 나환자촌을 방문했던 게바라에게 일어난 변화를 각성이라고 불러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확대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p161」
나병은 사실상 박테리아 감염과 사회적 낙인이라는 두 가지 질병이다. 나병은 신경을 박테리아가 짓눌러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는 병이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으면 환자들은 그 부위를 돌보지 않게 되고, 스스로 제 손가락과 발가락, 발, 손을 베이고 화상을 입고 결국 그 부위를 잃게 되는 병이다. 내가 느끼는 것까지가 자아라고 한다면, 말단 부분의 감각이 없어진 나병 환자들의 자아는 손이나 팔이나 혹은 다리만큼 줄어드는 것일까? 자아를 규정하는 것이 고통과 감각이라면 사라진 감각만큼 자아가 사라진 것일까? 「리베카 솔닛」은 경계의 확장성을 이야기한다. 경계의 확장성을 규정하는 걸 무엇이라 할까? 사랑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펼쳐 보면 엄마와 나의 이야기가 결국 사랑으로, 가족으로 귀결된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Nic netrva vecne)
「감정이입(empathy)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정으로 타인의 현실적 존재를 알아보는 일이며, 바로 이것이 감정이입을 탄생시키는 상상적 도약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p286」
이해하고 공감한다. 용서하다 봐주다. 라는 다른 표현을 “감정이입”이라 한 것이 아닌가? 이해를 위해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감정이입은 또한 용서임을, 서로 도우며 함께 이뤄지는 것임을 말한다. 감정이입을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연민”이라 생각한다.
종교의 근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랑과 자비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나 생각했을 때 “연민” 측은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 도와주고 싶은 감정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에세이집에서 품고 있는 시작의 말은 “살구”로 시작한다. 나오는 많은 단어는 ‘자아’ ‘길’ ‘경계’ ‘실’ 등이다. 이어주는 것, 문을 열지 않으면 줄 수가 없다. 엄마와 저자의 이야기 속,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의 소통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마치 실타래를 푸는 것처럼 이해하지 못한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그 이야기 속에 직접적인 경험과 간접적인 지혜로 공감을 유도한다. 공감 속에는 시간이 녹아있다.
읽고 느낀 점은 지식이나 지혜의 깨우침도 아니다. 이해도 아니다.
화해의 기술도 아니다. 자신이 가진 사랑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 저자에게도 시간이 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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